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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독교의 역사 -- 아담에서부터 아브라함까지

        하느님이 흙으로 아담과 이브를 만들어 에덴 동산에서 살게 했다.
        아담은 930년간 살았다.
        성경기록을 바탕으로 한다면 아담은 BC 4100 년경에 태어났다.

        아담(Adam) 의 후손들은 다음과 같다.

          1대 : Adam ( 930년간 살았음 )
          2대 : Seth ( 912년간 살았음 )
          3대 : Enosh ( 905년간 살았음 )
          4대 : Kenan ( 910년간 살았음 )
          5대 : Mahalalel ( 895년간 살았음 )
          6대 : Jared ( 962년간 살았음 )
          7대 : Enoch ( 365년간 살았음 )
          8대 : Methuselah ( 969년간 살았음 )
          9대 : Lamech ( 777년간 살았음 )
          10대 : Noah ( 950년간 살았음 )
          11대 : Shem "Semites" ( 600년간 살았음 )
          12대 : Arphaxad ( 438년간 살았음 )
          13대 : Shelah ( 433년간 살았음 )
          14대 : Eber "Hebrews" ( 464년간 살았음 )
          15대 : Peleg ( 230년간 살았음 )
          16대 : Reu ( 239년간 살았음 )
          17대 : Serug ( 230년간 살았음 )
          18대 : Nahor ( 148년간 살았음 )
          19대 : Terah ( 205년간 살았음 )
          20대 : Abram (Abraham) ( 175년간 살았음 )
          21대 : Isaac ( 180년간 살았음 )
          22대 : Jacob (Israel) ( 147년간 살았음 )  
          23대 : Levi ( 137년간 살았음 )
          24대 : Kohath ( 133년간 살았음 )
          25대 : Amram ( 137년간 살았음 )
          26대 : Moses ( 120년간 살았음 )


        아담이후  
        8대손 므두셀라는 187세때 아들 라멕을 얻었고, 969세까지 살다가 죽었다.
        9대손 라멕은 182세때 아들 노아를 얻었고, 777세까지 살았다.
        10대손 노아는 500세 이후에 세 아들을 얻었으며, 600세때 대홍수를 겪었으며, 950세까지 살았다.

        성경책의 내용을 기초로 하면
        노아(Noah) 는 BC 3100 년경에 태어났고, 노아의 홍수는 BC 2500 년경에 일어났는데
        지질학자들과 역사학자들은 실제 노아의 홍수는 약 BC 3500 년경에 일어났다고 한다.

        19대손 아브라함 ( Abraham )
        아브라함이 태어났을 때 노아는 892세였으며, 아브라함은 노아가 950세에 죽을 때까지 58년간을 동시대를 살았다.

        아브라함( Abraham )은
        BC 2100 년경에 우르 지역( 메소포타미나 남쪽 지역 )에서 태어 났다.
        당시 그곳에서는 2층 집이 있었고 하수도 시설이 되어 있을 정도로 아주 발달된 문화를 가지고 있었다.

        그의 나이 75세때에 가나안( 지금의 이스라엘 지역 - Canaan ) 지역으로 이주하였다.
        그는 86세때 애굽인(이집트) 여종 <하갈>에게서 <이스마엘>을 낳았고
        그의 나이 100세에 비로소 아내 <사라>에게서 <이삭>을 얻었다

        아브라함은 환상이나 천사들의 방문을 통해 하느님의 말씀을 수시로 전달받았다고 한다.
        아브라함 ( Abraham )은 175세 나이로 세상을 하직하였다.


      아담의 출현 ---- BC 4000 경

        성경기록을 바탕으로 한다면
        하느님이 흙으로 아담과 이브를 만들어 에덴 동산에서 살게 했는데 이때가 BC 4100 경이다.
        그리고 아담은 930년간 살다가 죽었다.


      노아의 홍수 ---- BC 3,000 년경

        세계 곳곳에는 고대에 발생한 무수한 홍수 이야기들이 있다.
        이 홍수 이야기는 점토판에 상형문자로 쓰여져 있는데
        이 점토판은 BC 2,000 년경에 제작된 것( 바빌론에서 발견된 것 ) 도 있고,
        BC 3,300 년경에 제작된 것( 수메르지역에서 발견 된 것 ) 도 있다.

        이 홍수 이야기 사이에는 차이점이 있지만, 유사점도 많이 있다.
        또 성경(창세기)에 나오는 이야기와도 유사한 점이 많다.

        이 홍수는 전세계적으로 일어났는지, 또 노아가 살았던 지역에서만 일어났는지 정확하게는 알수 없지만
        규모가 아주 큰 홍수 였음에는 틀림이 없으나,
        그러나 BC 3000 년경부터 이집트에서는 강력한 국가 형태의 왕조가 시작되었고
        특히 BC 2500 년 경에는 대형 피라미드가 건설되었던 것으로 볼때
        또 지금의 이라크 지역에서는
        BC 4000 년경부터 BC 2350 년까지 수메르의 도시 왕조 국가들이 번성하고 있었던 사실을 생각할때
        노아 홍수는 전세계적으로 일어난 초대형 홍수는 아닌 것으로 추측 되어진다.

        성경책의 내용을 기초로 하면,
        노아의 홍수는 BC 2500 년경에 일어났는데 홍수 기간은 1년 정도( 364일 ) 였다고 한다.

        그런데 지질학자들과 역사학자들은
        실제 노아의 홍수는 약 BC 3500 년경에 일어났다고 한다.

        실제 노아가 만든 방주(Ship)가 남아 있다는 장소가 발견되기도 하였다.
        터키 동부지역에서 아르메니아, 이란과의 국경에 걸처 있는 아라랏트 산 ( ARARAT -- 높이 : 5,125 m)에서는
        노아 방주 형태의 배의 형체가 발견되어 2010년 현재 아직도 발굴작업을 벌리고 있는 중이다.


      아브라함 후손의 분열 --- 기독교와 이슬람교의 분열 ---- BC 2000 경

        기독교와 이슬람교의 뿌리는 같은 뿌리에서 갈라져 나오게 된다.
        이 두 종교는 모두 아브라함을 신앙의 근원으로 생각하고 있는 점에서는 일치한다.

        BC 2000 년경 이스라엘 부족의 우두머리인 아브라함에게는
        본처인 <사라>에게서 얻은 <이삭>이라는 아들과
        여종 <하갈>에게서 얻은 <이스마엘>이라는 아들이 있었다.

        기독교는 아브라함과 본처 <사라> 사이에서 낳은 <이삭>과 그의 아들 <야콥>을 조상으로 하고 있고,
        이슬람교는 아브라함과 여종 <하갈>사이에게 낳은 <이스마엘>을 조상으로 하고 있다.

        이슬람 경전인 코란에 따르면
        <하갈>은 아들인 <이스마엘>을 데리고 가나안 지역을 떠나 현재 사우디아라비아에 있는 <메카>로 이주하였다.
        이슬람을 창시한 <마호메트>는 <이스마엘>의 후손이다.

        성경와 코란은 같은 믿음의 뿌리로 시작하고 있고, 같은 조상, 같은 기원에서 나온 두 종교가
        세상을 뒤엎는 전쟁을 하면서 박 터지게 싸우고 있는 것이다.

        기독교의 성경은 예수를 하느님의 아들로 믿지 않으면 멸망한다고 가르치고 있고,
        이슬람교의 코란은 예수를 하느님의 아들이라고 믿는 것은 저주받을 일이라고 가르치고 있다.
        분명히 둘중에 하나는 틀린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두 종교가 갈등으로 싸울 수 밖에 없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출애굽 -- 모세가 이끄는 이스라엘 백성이 이집트(애굽)를 탈출 ( BC 1446 년 )

        당시 이집트의 역사를 보면

          제 13왕조 ( BC 1756 년 ~ BC 1630 년 )때 많은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이집트로 들어와서 정착하고 살았다.
          제 15 왕조 -- 힉소스( Hyksos ) 왕조 ( BC 1650 년 ~ BC 1535 년 ) 때에는
          아시아 지역에서 온 민족이 이집트의 지배 계급이 되고, 왕(王)이 되어 이집트 사람들을 다스린 왕조였다.
          제 17왕조 -- 테베 왕조( BC 1630 년 ~ BC 1540 년 )
          제 18왕조 ( BC 1539 년 ~ BC 1292 년 ) -- 이집트를 재통일한 토착 통치자 시대
          람세스 왕조 (제 19왕조 , 제 20 왕조 )

          참조 : 고대 이집트의 역사


        BC 1700 년경부터 <야곱>의 후손인 <요셉>이 이끌었던 이스라엘 민족은 이집트로 들어와서 살게되었는데,
        BC 1535 년 이집트에서의 아시아인들의 왕조였던 힉소스( Hyksos ) 왕조가 멸망하면서
        토착 이집트인들에 의해 이스라엘 민족을 포함한 이집트에 거주하고 있는 이방인들의 집단을 박해하기 시작했었다.
        이방인들이 사내아이를 낳으면 강물에 던져 죽게 하였으며
        이방인 집단의 사람들을 강제 노동에 동원하고 종살이를 시켰던 것이다.

        이집트 사람들이 보는 이방인은
        힉소스( Hyksos ) 왕조를 세웠던 아시아 지역의 사람들과,,,,
        이 왕조에 협조하면서 같이 살아온 이스라엘 민족과,,,
        하비루(Habiru)라고 불리우는 아시아 지역에서 온 유목 민족을 포함하는 것으로
        당시 200만명 정도였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당시 이집트의 왕(王) --- 제 18 왕조

          투트모세 2세 (Thutmose II : BC 1514 - BC 1504 ) : 투트모세 1세의 사위요, 모세의 양모인 하셑수트의 남편임
          투트모세 3세 (Thutmose III : BC 1504 - BC 1448 ) : 투트모세 2세가 얻은 후처에서 낳은 아들.
          아멘호텝 2세 (Amenhotep II : BC 1448 - BC 1424 ) : 모세가 10가지 재앙으로 대결했던 왕(王)


        당시 이집트 왕(王)이었던
        투트모세 2세는 본처 <하셒수트>와의 사이에서 아들이 없어서 후처를 얻어서 투트모세 3세를 낳았다.
        BC 1504 년 투트모세 2세는 투트모세 3세가 10세쯤 되었을 때 죽었다.
        어린 <투트모세 3세>가 즉위하였지만 실제로는 <하셒수트>가 섭정을 하였으며,
        후처의 자식인 <투트모세 3세>를 싫어한 <하셒수트>는 양아들인 < 모세 -- 당시 22세 >가 왕이 되기를 원했다.

        <모세 - Mose >는 이집트의 왕이 되는 것을 거절 했다고 한다.
        성경에 < 모세 >가 애굽의 왕이 될 수 있었다고 적고 있는 것은 바로 이런 상황에서 였다.

        BC 1487년 투트모세 3세 (Thutmose III )가 왕권을 회복하게 되자
        위기 의식을 느낀 <모세>는 이집트를 떠나 미디안으로 도망갔으며
        그곳에서 <이드로> 집안의 <시뽀라>를 아내로 맞이하고 양치는 목자가 되어 살게 되었다.
        어느날 <모세>는 하느님을 만나 이집트 땅에서 고생하고 신음하는 이스라엘 백성을 구하라는 사명을 받고
        다시 이집트로 들어가게 된다.

        이때가 투트모세 3세 (Thutmose III : BC 1504 - BC 1448 ) 가 죽고 아들이었던
        아멘호텝 2세 (Amenhotep II : BC 1448 - BC 1424 )가 18세 나이로 이집트의 왕(Pharaoh)이 되었을때이다.(BC 1448 년)

        <모세 - Mose >는
        아멘호텝 2세 (Amenhotep II) 이집트의 왕(王)에게 이스라엘 백성을 내보내 달라고 간청하였으나 실패한 후
        10 가지 기적을 보여줌으로써 드디어 이스라엘 백성의 석방을 허락 받게 되었고
        BC 1446 년 이스라엘 백성은 <모세>를 따라 홍해 바다를 건너 이집트 땅에서 탈출 할 수 있었다.

        이집트를 탈출한 <모세 - Mose >는
        추종자들과 함께 40년간 사막을 헤메게 되는데 가나안(Canaan)땅에 도착하기 전 모세는 죽게 되고,
        <모세 - Mose >가 죽은 후
        그의 추종자들은 BC 1406년경에 드디어 가나안(Canaan)땅에 도착하게 된다.

        <모세 - Mose >의 일생

          BC 1527 년 출생 ---- 40년간 이집트에서 궁중 생활을 했다.
          BC 1487 년 ~ BC 1447 년 : 미디안 광야에서 생활 ( 40년 )
          BC 1446 년 : 이집트 탈출 ( 출애굽 )
          BC 1445 년 ~ BC 1406 년 : 사막에서의 유랑생활 ( 40년 )
          BC 1406 년 : 사망


        이때 이집트를 탈출한 민족은 이스라엘 민족만 아니고
        하비루(Habiru)라고 불리우는 아시아 지역에서 온 유목 민족들도 함께 있었다

        모세의 십계명 : 이스라엘 백성은 하느님의 선택된 백성이 되고 하느님은 이스라엘의 하느님이 되는 계약이었다.

        이스라엘 민족의 이집트 생활은 약 400년정도인데
        초기 300년정도는 이집트 왕의 보호아래 안정된 생활을 할 수 있었지만
        후기 100년간은 이집트 사람들의 노예 역할을 하는 고달픈 생활이었다.
        다행이 <모세>의 도움으로 이집트를 탈출하였지만 가나안 지역까지 가는데 약 40년이 걸렸다.

        이스라엘 백성은 모세의 인도로 40년 간 사막에서 생활하면서
        많은 시련과 도전을 통해 하느님께 대한 신앙을 정화하고, 약속의 땅 가나안 지역에 도착하게 되었다.

        BC 1400 년경 <모세>의 뒤를 이는 여호수아( Joshua )는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고 가나안(Canaan)지역을 정복하여
        12개 부족 별로 땅을 나누어 각 부족별로 통치를 하도록 하였다.
        기존 가나안(Canaan) 지역에 살고 있었던 원주민들의 저항도 상당히 강했다.


      삼손 (Samson) 과 데릴라 (Dalila)

        BC 1150년경 팔레스티나 지역에서 있었던 이야기
        당시 이스라엘 사람들은 팔레스티나 왕의 지배를 받고 있었다.

        이스라엘 사람이었던 삼손(Samson)은 국가를 혼자서 파괴시킬만큼 엄청난 힘을 부여 받았다.
        하지만 술을 마시거나 머리카락을 자르면 힘이 빠져나간다.
        삼손(Samson)은 자신을 죽이기 위해 군대를 보낸 팔레스티아 지역을 파괴하였다.
        당시 삼손(Samson)은 팔레스티아 여자인 데릴라(Dalila)와 결혼하여 살고 있었는데
        데릴라(Dalila)는 삼손에게 갖은 아양을 떨며 삼손(Samson)의 힘의 비결을 알아낸다.

        데릴라(Dalila)는 삼손(Samson)이 잠든 사이에 밀고하여 삼손(Samson)의 머리카락을 잘랐다.
        괴력이 모두 빠져나간 삼손(Samson)은
        팔레스티아 군대에 잡혀가서 두 눈을 뽑힌 후 포로가 되어 맷돌을 돌리며 노예생활을 하였으나
        죽기 전에 과오를 뉘우치고 다시 괴력을 얻어 팔레스티아의 성전을 무너뜨리고 자신도 죽었다.

        성경에 나오는 이 이야기는 수많은 영화, 소설, 오페라의 작품으로 공연되고 있다.


      이스라엘 왕국의 탄생 ( BC 1020 년 )과 멸망 ( BC 587 년 )

        아브라함의 아들 <이삭>에게는 <에서>와 <야곱>이라는 두 아들이 있었다.
        당시 이스라엘 풍습에는 마땅히 맏아들이 상속받게 되어 있다.
        상속권을 두고 형제간의 다툼이 생겨서 < 야곱 >은 외삼촌 집으로 보내졌고
        그곳에서 4명의 아내의 몸에서 12 명의 아들을 낳았다.
        이들 12형제가 나중에 이스라엘 왕국의 중추가 된 12 부족이다.

        이스라엘 왕국의 탄생 ( BC 1020 년 )과 멸망 ( BC 587 년 )

        통합 이스라엘 왕국 ( BC 1030 년 ~ BC 931 년 )

          사울 (Saul) 왕 : BC 1030 년경 ~ BC 1010 년 경
          다윗 (David) 왕 : BC 1010 년경 ~ BC 970 년 경
          솔로몬 (Solomon) 왕 : BC 970 년 경 ~ BC 931 년 경

          사울 (Saul) 왕

            이스라엘 왕국의 첫 번째 왕이다.
            블레셋 왕국의 공격으로 아들(요나단)을 잃고 블레셋 군대에 포위되자 결국 자살하였다.

           
          다윗 ( David )과 골리앗 ( Goliath )의 싸움

            이스라엘 왕국과 블레셋 왕국이 서로 싸울때
            이스라엘에서는 양치는 목동 출신의 약한 다윗 ( David )이 전쟁터에 나가서
            블레셋 왕국의 장군이었던 괴물같은 거인 골리앗 ( Goliath )을 상대로 싸워 이긴다.

            이후 약한 사람과 강한 사람이 싸워 약한 사람이 이길때에는
            다윗 ( David )과 골리앗 ( Goliath )의 싸움에서 약한 다윗( David )가 이긴 이야기를 사용한다.


          다윗 (David) 왕

            이스라엘 왕국의 제 2대 왕으로서, 이스라엘 민족에게 가장 존경받는 왕이다.
            성경에서는 예수가 다윗의 후손이라고 적고 있다.

            BC 998년 이스라엘을 통합하여 왕이 되어 수도를 예루살렘으로 정하였다.


          솔로몬 (Solomon) 왕

            다윗 (David) 왕의 아들로써 이스라엘 왕국의 전성기를 이루었다.

            다윗왕의 아들인 솔로몬이 왕위에 오르자,
            국위는 크게 떨쳐 그 영토는 서쪽은 지중해에서 동쪽은 티그리스, 유프라테스 강에까지 이르렀다고 한다.
            솔로몬왕이 이처럼 강대한 나라를 건설할 수 있었던 것은
            이 나라를 지탱하는 12 부족의 철통같은 단결과 솔로몬왕의 뛰어난 정치력에 있었다.

            그러나 솔로몬 왕이 죽자,
            이 왕국은 다시 북쪽의 이스라엘 왕국( 10부족 )과 남쪽의 유대왕국( 2부족 )으로 갈라지게 된다.


        이스라엘 왕국 ( BC 931 년 ~ BC 722 년 ) -- 북쪽

          BC 722 년 티그리스 강 상류 지역에서 성장한
          앗시리아(Assyria) 왕국 (BC 911년 ~ BC 612년 )의 사르포 2세의 군대에 의해 멸망하고 만다.
          멸망한 이스라엘 왕국의 10 부족은 역사에서 자취를 감추었는데 이들이 어디로 갔는지 아무도 모른다.


        유대 왕국 ( BC 931 년 ~ BC 587 년 ) -- 남쪽

          바빌론 유수 ( Babylonian Captivity  --- 幽囚 )

            BC 597 년, BC 586 년, BC 582 년 3차례에 걸쳐 유대왕국이 신바빌로니아 왕국(지금의 이라크)의 침략을 받아
            수많은 유대(이스라엘) 왕국 사람들이 바빌론으로 포로가 되어 끌려간 사건을 말한다.

            3번의 전쟁으로 유대의 모든 도시들은 파괴되었고
            유대(이스라엘) 왕국 사람들은 포로로 끌려갔으며
            이후 약 50년간 유대 민족은 온갖 고난을 겪게 되었다.
            하지만 바빌로니아에서 새로운 문화에 접하게 되면서 유대인 공동체를 회복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BC 539년 페르시아의 왕(王)이었던 키루스 2세가 바빌로니아를 공력하여 바빌로니아를 멸망시켰다.
            이때 페르시아( 지금의 이란 )의 왕(王) 키로스 2세는
            바빌로니아에 끌려온 유대(이스라엘) 왕국 사람들의 유대(이스라엘) 왕국으로 귀환을 허용하였다.


          유대(이스라엘) 왕국 사람들은
          바빌로니아 왕국(지금의 이라크)에서 50년간 포로 생활을 하다가
          고향인 이스라엘로 돌아온지 50년만에 이집트의 공격으로 멸망하였다.
          BC 587 년 이집트군의 침입으로 유대(이스라엘) 왕국은 멸망하였다.


      역사적으로 본 기독교와 이슬람의 충돌

        로마-유대 전쟁 ( 유대 독립 전쟁 : 66 년 ~ 135 년 )

          로마 제국의 지배에 저항하여 유태인들이 3차례에 걸쳐 벌인 독립전쟁
          1차 유대 독립전쟁 ( 66 년 ~ 73 년 )
          2차 유대 독립전쟁 ( 115 년 ~ 117 년 )
          3차 유대 독립전쟁 ( 132 년 ~ 135 년)

          이 전쟁으로 로마군이 예루살렘을 함락시키고, 성전을 불태우고, 유태인들의 저항군대를 진압했다.
          이 전쟁의 폐배로 유대인은 자신의 국가를 잃어버리고 세계 각지로 흩어지게 되었다.


        로마 제국에 의한 기독교 시작 --- AD 200 년경

          AD 30년경 예수가 죽어 승천(부활)한 후부터 기독교가 전파되기 시작했는데,
          AD 200 년경의 로마 제국 시절에는 기독교가 성행했다.

          313년 로마제국의 국교를 기독교로 정했다.
          395년 로마 제국이 동로마제국과 서로마 제국으로 분리 된 이후에는
          동로마제국에서는 기독교를 정식으로 국교로 정하고 포교 활동을 적극적으로 전개했다.

          참고 : 로마 제국


        이슬람교 출발 ( 622년 )

          622년 부터 사우디아라비아에 위치한 메디나(Medina)지역에서 <마호메트>에 의해 시작된 이슬람교는
          이슬람 제국의 부흥과 함께
          중동 지역, 북부 아프리카지역, 중앙 아시아 지역으로 확산되었고 유럽의 스페인 지역으로도 전파되었다.

          참고 : 이슬람 제국 ( 650 년 ~ 1258 년) --- 사라센 제국 -- 아랍 제국


        십자군 전쟁 ( 1096 년 ~ 1270 년 )

          유럽의 기독교 국가들이 교황의 호소로 조직된 군대를 이끌고
          기독교의 성지인 <예루살렘>을 탈환하기 위해 10차례에 걸쳐 일으킨 대규모 군사 원정

          200년동안 전쟁을 했지만 <예루살렘>을 점령한 시기는 약 120년밖에 되지 못하고
          <예루살렘>은 결국 탈환하지 못한 실폐한 전쟁이었다.


        이슬람교의 전성기인 ( 650 년 ~ 1258 년 )


        가톨릭교 신성동맹과 이슬람교 국가인 오스만 투르크제국의 레판토해전 ( 1537년 ~ 1538년 )

          오스만 투르크 제국과 기독교 연합 ( 스페인, 포르투갈, 말타, 피렌체 ) 함대가 지중해 해상권을 두고
          프레베자 ( Preveza ) 해역에서 싸운 전쟁
          기독교 연합함대는 함선 600여척과 병력 6만명이 참전하였고,
          오스만 투르크 함대는 함선 122척과 병력 2만명이 참전했는데,
          이 전쟁에서 오스만 투르크 함대가 승리했다. 이로써 지중해의 재해권은 오스만 투르크 제국에게 넘어갔다.  

          참고 : 오스만 투르크 제국


        기독교의 세력확장 ( 1600 년 ~ 1900 년 )

          유럽에 의한 남미, 북미, 아프리카, 아시아 지역의 식민지 개척으로 기독교가 세력을 확장했다.
          1800 - 1950년대에는 기독교가 식민지 확장으로 대부분의 무슬림 지역을 장악했다.


        이슬람교의 세력확장 ( 1950년 이후 )

          1950 년 이후로 아프리카지역에는 기독교보다 이슬람교가 더 많은 세력을 확장하고 있고,
          이들 세력간에 무력전투가 끝임없이 벌어지고 있다.


        이스라엘의 건국 --- 1차 중동 전쟁 ( 1948년 ~ 1949년 )

          지금 이스라엘이 차지하고 있는 팔레스타인 지역의 땅은 원래 오스만 터키의 식민지였었다.
          1차 세계대전(1914년~1918년)에서 승리한 영국은 이땅을 차지 하게 되었다.

          그리고 영국은
          1917년 <벨푸어(Balfour) 선언>을 통해 팔레스타인 땅에 유대 국가와 팔레스타인 국가를 세운다고 발표했다.
          1947년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서 << 두 국가를 세우되 그 경계를 유엔이 정한다 >>고 결의했다.
          1948년 이스라엘이 건국되었다.

          국제연합이 영국이 차지 하고 있는 팔레스타인 지역을 분할 할것을 제시하자
          아랍측이 이를 거부하고, 주변의 모든 아랍국가들이 이스라엘을 공격함으로써 전쟁은 시작되었다.
          전쟁은 이스라엘의 승리로 끝이 났다.

          1949년 정전협정에 따라 이스라엘의 국경선이 정해졌으며,
          이스라엘 땅에 살고 있었던 아랍인들은 아랍땅으로 이주하였고 ( 70만 명 정도 )
          아랍 국가에 살고 있었던 이스라엘 사람들은 이스라엘로 이주하였다 ( 80만 명 정도 )

          이때부터 이 지역은 이스라엘, 이집트, 요르단으로 분할되었다.


        2차 중동 전쟁 ( 1956년 ~ 1057년 )

          수에즈 전쟁

          이집트가 수에즈 운하 국유화를 선언하였다.
          영국과 프랑스가 반발하여 공군을 동원하여 수에즈를 폭격하였으며
          1956년 10월 29일 이스라엘군이 국경을 넘어 시나이반도를 침공하면서 전쟁이 시작되었다.

          전쟁은 1957년 5월까지 계속되었고,
          UN의 중재로 이스라엘, 영국, 프랑스의 연합군대가 철수하면서 전쟁은 끝이 났다.
          이스라엘, 영국, 프랑스의 연합군대는 전쟁에서 이겼으나 결과적으로 수에즈 운하를 잃게 되었다.


        3차 중동 전쟁 ( 1967 년 )

          < 6일 전쟁 >이라고 한다.

          1964년경부터 아랍 게릴라의 활동이 시작되어,
          게릴라의 기지가 된 시리아에 대해 이스라엘은 1967년 4월 대규모 공격을 감행하였다.

          이에 반발하여 이집트가 군대를 투입할려고 하니까 시리아, 요르단, 이라크가 이집트를 지원하였다.
          6월 5일 이스라엘은 공군 전투기를 출동시켜
          이집트 공군기지를 맹폭격하여 170분에 걸친 폭격 끝에 이집트 전투기 300 대를 파괴했고
          6월 6일에는 시리아, 요르단, 이라크 를 폭격하여 전투기 416 대를 파괴했다.
          아랍측의 공군력을 괴멸시킨 이스라엘군은 압도적인 우세 속에서 주변의 아랍국가를 공격하였다.

          국제 연합 안전보장 이사회의 중재로
          6월 6일 정전 협상이 이루어졌으나, 이스라엘 군대는 주변지역을 점령하게 되었다.


        4차 중동 전쟁  ( 1973 년 ) -- 욤키푸르 전쟁 -- 라마단 전쟁 -- 10월 전쟁

          전쟁은 1973년 10월 6일 이집트군과 시리아군이
          3차 중동전쟁 ( 1967년 ) 때 이스라엘이 점령한 시나이 반도와 골란 고원을 기습 공격하면서 시작되었다.
          처음에는 아랍연합군이 우세하였으나, 곧 이스라엘군이 압도하게 되었다.
          2주일후에는 시리아군은 이스라엘 북부인 골란고원에서 거의 퇴각하였으며,
          1973년 10월 26일 유엔의 정전 결의가 효력을 갖게 됨으로써 전쟁은 끝났다.


        기독교 국가인 <그리스>와 이슬람교 국가인 <터키> 사이에 벌어진 키프로스 사태 ( 1974 년 )

          지중해에서 3번째로 큰 섬인 키프로스 섬에는
          그리스인이 80 % 정도그리고 터키인들이 20 % 정도 거주하는데,
          터키 정부에서 이 섬의 자국민의 보호를 위해서 1974년 이 섬에 군대를 파견한 사건


        미국 뉴욕 무역센터 빌딩 테러 ( 2001년 9월 11일 --- 911 사태 )

          이슬람교의 테러 단체에서 빌딩을 폭파한 사건


        기독교 국가인 미국의 이슬람교 국가인 아프가니스탄 침공  ( 2001년 10월 7일 )

          이슬람 테러 지원세력인 오사마 빈 라덴과 알카에다 그리고 그들을 지원하는 탈레반을 축출하기 위함


        기독교 국가 미국의 이슬람교 국가인 이라크 침공 ( 2003년 3월 20일 )

          사담 후세인 제거


      기독교

        <예수>이외에 다른 신(神)은 없다. --- 기독교의 신조

        예수는 하나님의 아들이다.

        기독교 신앙은 예수의 존재에 대해서 어떤 다른 논리를 인정하지 않는다.
        즉 하느님의 아들인 예수의 죽음과 부활은 성서( Bible )의 핵심이다.

        기독교에는 여러 종파가 있는데
        개신교, 로마 가톨릭, 성공회등 예수를 그리스도(구세주)로 믿는 종교들은 모두 기독교 라고 말할 수 있다.

        < 예수의 잃어 버린 무덤 > = < The Burial Cave of Jesus ( 예수의 매장 동굴 ) >

          다큐멘터리로 제작되어 2007년 3월에 TV (디스카버리 채널)을 통해서 방영된 내용인데
          1980년대 이스라엘의 예루살렘 남쪽의 건설 현장에서 발견된 무덤중에서
          <예수>의 관이 포함되어 있다고 주장하는 다큐멘터리.

          발견 당시 무덤 앞에 있는 비문을 조사한 고고학자들은 무덤의 주인공이
          < 요셉의 아들 예수 > , < 마리아 >, < 예수의 아들 유다 > 라고 적혀져 있었다고 하며
          이 무덤이 예수 가문의 무덤이며 <예수>와 <마리아 막달레나>가 아들 <유다>를 낳았다고 주장하고 있다.

          만일 이 주장이 사실이라면
          예수가 죽은 지 3일 만에 부활해 승천했다는 기독교의 근본적인 믿음이 엉망이 되어 버린다.
          또 관속의 뼈에서 축출한 유골들의 DNA 검사를 통해 이들 <예수>가족들의 관계를 밝힐 수도 있다.


        기독교에서는 <십일조>라 하면서 소득의 10%를 교회에 내라고 한다.


      이슬람교

        <알라>이외에 다른 신(神)은 없다,,, <마호메트>는 <알라>의 사자이다. --- 이슬람교의 신조

        예수는 하나님의 아들이 아니다.

        이슬람교는 예수의 동정녀 탄생도 믿는다. 그러나 성령으로 잉태된 것을 믿지 않는다.
        예수의 동정녀 탄생을 아담이 아버지 없이 태어난 것처럼 여길 뿐이고,
        예수가 하느님의 아들이라는 것을 인정하지 않으며,
        예수를 하느님이 보낸 여러 선지자 가운데 하나일 뿐이라고 여긴다.

        예수가 하느님의 아들임을 인정하지 않을 뿐아니라,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도 믿지 않는다.

        이슬람교의 창시자는 <마호메트>이다.
        그이 나이 40세에 천사 <가브리엘>의 중재로 << 알라의 뜻에 따르라 >>라는 계시를 받고
        이때부터 사람들에게 이슬람교를 전파하기 시작했고,
        622년 이슬람교 신도들과 함께 사우디아라비아에 있는 <메디나>로 이주하게 되었는데,
        이때를 이슬람교의 원년으로 간주한다.

        <이슬람>은 <하나님의 뜻에 순종한다>는 뜻이고, <무슬림>은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자>라는 뜻이다.

        이슬람에서는 소득의 2.5%를 이슬람 교회에 내라고 한다 ( 자카트 )

        이슬람교에서는 하루 5번 <메카>를 향해 예배를 하라고 한다.
        그래서 이슬람권 호텔이나 주요 관청에 가면 <메카> 쪽을 표시하는 화살표가 그려져 있기도 하다.

        이슬람교에서는 <라마단> 이라고 하는 낮 동안 금식을 해야 하는 1년에 1개월 정도의 행사가 있다.
        <라마단> 기간에는 음식, 음료, 흡연, 성행위 등이 모두 금지된다.


      불교

        누구나 깨치면 부처가 될 수 있다.
        석가모니는 수많은 부처들 중에서 단지 한 명일 뿐이다.

        세상이 혼탁하고 어지러우면 도(道)를 깨친 미륵불이 나타난다고 믿고,
        그 당시 또는 그가 죽은 후에라도 그의 도(道)를 세상 사람들로부터 인정받으면 그는 부처로 인정하는 것이다.

        석가모니

          석가모니 탄신일 ( 釋迦 誕辰日 :  BC 563년 4월 8일(음력) )

          석가모니는
          북인도 카필라 왕국 (지금의 네팔 지방)의 왕 슈도다나(Suddhodna)와 마야(My)부인 사이에서 태어났다.

          원래 석가족은 감자왕(Okkaka)의 후예들로 아리아 인에 속하는 종족이었다.


      한국의 선택

        미국과 유럽을 중심으로 한 기독교 문화,
        중동과 남부 아시아 지역을 중심으로한 이슬람 문화

        피 터지게 싸우고 있는 2개의 문화속에서 한국은 중립적 실리 외교노선으로 우리 미래의 길을 찾아야 한다.
        아직까지 세계경제를 이끌어가는 미국과 유럽으로부터 경제적인 실리를 챙기고,
        종교와 이념을 중시하는 중동으로부터 또 다른 실리를 챙겨서
        앞으로 일어날 극단적인 대립의 전쟁시에 제 3자의 입장에서 세계를 재편할 수 있는 자리를 찾아야한다.

        2001년 9월 11일 미국에서 일어난 사건으로
        미국에서는 테러와의 전쟁을 선포하고 중동의 각 국가들을 힘으로 눌러둘려고 하고 있는 지금의 상황은
        이슬람 세력과 기독교 세력의 극단적 대립으로 이어져 세계 곳곳에서 일촉즉발의 위기에 직면해 있는 상태이다.

        새로운 국제질서 재편의 숨막히는 상황에서 우리나라가 지향해야 할 것을 찾아 낼려면

          (1) 주역을 공부하여 순리를 찾고,,

          (2) 남들이 싸우는 종교와 무관한 내용으로 새로운 체제를 만들어 내야 하며,,,

          (3) 요즘 인기를 얻고 있는 역사드라마 주몽, 연개소문, 대조영을 다시 한번 보면서 그 해답을 찾아야 한다.


        이 문제를 풀수 있는 민족은 세상에 우리민족밖에 없다.
        두 문화의 중간에서 중제자역활을 할 수 있는 나라는 아시아에 있는 나라라고 볼수 있는데,,,
        중국 ??? --- 역사를 보면 알수 있다 -- 중국은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이 하나도 없다.
        인도 ??? --- 역사를 보면 알수 있다 -- 인도은 세계에 머리를 내밀고 나온적이 없는 민족이다.
        일본 ??? --- 사상이 약하다. 정신적인 문화가 약하다는 말이다.

        한국 ??? --- 우리는 할 수 있다
        이씨조선을 건국할 때 정도전이란 학자가 불교와 유교의 싸움을 중재한 경력이 있고,,,
        세계에서 머리가 가장 좋은 민족으로
        우리가 해결해야한다는 큰 판을 깔면
        온 국민이 힘을 합해서 이루어낼수 있는 저력이 있는 민족이다.

        이것이 우리민족이 세계를 휘어잡을 수 있는 기회이고 큰 과제인 것이다.
        이미 이 문제를 풀려고 지리산 산신령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한국에서의 종교 -- 평화로운 다종교 사회

        우리나라에는 불교, 유교, 천주교, 개신교, 민족 종교(동학, 증산도, 원불교) 등이 다양하게 분포하지만
        중동(이슬람교)이나 서양(기독교) 국가들에 비한다면 종교간 갈등이 비교적 적은 편이다.

        우리나라에도 종교적 갈등이 있다.
        초등학교에 있는 단군상을 훼손한다거나,,,
        아프가니스탄 한국인 인질 사건으로 인터넷을 통해서 안티기독교 운동이 벌어지는 현상,,,

        역사적으로 보면
        신라와 고려는 불교 국가였고, 조선은 유교 국가였었다.

        우리 민족에게는 홍익인간(弘益人間) 사상이 있다.
        고조선의 건국이념이 홍익인간(弘益人間)이고 한국의 교육이념이 홍익인간(弘益人間)이다.

        참고 : 홍익 인간 (弘益 人間)

        홍익인간(弘益人間)이란
        나혼자 어떻게 잘해보겠다는 생각이 아니고 같이 잘해보자는 사상이다.
        즉 남을 존중하고 더불어 살아가자는 이야기이다.

        이 사상은 오늘날 지구촌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는 더더욱 필요한 것이다.
        나와 남(적-敵)이 함께 살아가면서 우리가 되어야 하고,
        사람과 자연이 생태적으로 안정된 삶을 함께 누려야 하고,
        내가 가지고 있는 생각과 남이 가지고 있는 생각이 서로 다르다고 원수지간이 되는 것이 아니고
        서로 이해하고 준중하여 우리라는 틀속에서 공존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이런 사상으로 여러 수천년을 살아온 우리민족은
        다른 사람의 사상을,,, 종교를,,, 인증하고 살아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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