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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 (Roma) 제국

      에트루리아 ( Etruscan ) 왕국

        BC 7199 년 ~ BC 3899 년 까지 파내류산 ( 波奈留山 : 파밀고원으로 추정 됨 ) 밑에 있었던
        우리민족의 시조인 환국(桓國)에는 9개 민족이 있었고 64개의 집단(무리)이 있었으며,
        12개의 분국으로 구성되어 있었는데
        그중에서 수밀이국 ( 須密爾國 : 이라크 남부 수메르(Sumer) 지역으로 추정)이 있었다.
        즉 우리 민족과 같은 계열의 민족이
        BC 4000년 경의 메소포타미아 수메르 지역에서 도시국가를 건설하여 메소포타미아 문명을 시작하였던 것이다.

        수메르 지역에 정착하여 살았던 민족은 다시 주변의 다른 지역( 이집트, 그리스, 이탈리아 등등)으로 이동하였는데,
        이들 중에서 이탈리아로 건너와서 BC 1000 년경 에트루리아 왕국을 건설한 사람들을
        역사학자들은 <에트루리아 ( Etruscan )>족이라고 부른다.

        BC 2333년 배달국(倍達國)이 멸망하고 고조선(古朝鮮)시대가 되었을 때
        정치적인 원인으로 동아시아에 남지 않고
        중앙아시아를 거쳐,,, 터키를 거쳐,,, 크레타섬을 거쳐,,, 이탈리아 까지 온 배달국(倍達國)의 후손들이
        이탈리아 에트루리아 지역에 살았었는데 이들이 건설한 왕국은 에트루리아 ( Etruscan ) 왕국이라 한다.

        이주할 당시 이들의 숫자는 많지 않았지만,
        이탈리아 현지에 살았던 움브리아족과 피케니족과 함께하면서
        BC 800 년경에는 도시국가들을 이루고 이탈리아 전역으로 세력을 확장해 나갔다.

        이들이 만든 문화의 기술 수준은 아주 발달된 것으로 판명되고 있다.
        로마 문명의 기술 수준도 에투루리아 왕국의 기술 수준을 넘지 못하고 있었다.

        에트루리아족의 타르퀸 왕조는
        BC 616 년부터 BC 509년까지 100 년이 넘는 기간을 로마를 통치한 것으로 밝혀졌고,
        BC 509 년경 에트루리아족은 로마에서 쫓겨났다.
        이때부터 에트루리아족 들이 세운 도시국가들은 하나씩 하나씩 로마의 세력권으로 통합되어 갔다.


      초기 도시 국가 ( BC 753 년 ~ BC 508 년 )

        BC 753 년 로물루스(Romulus)에 의해 로마라는 이름의 도시국가가 건설되었다.

        로물루스(Romulus)는 고대 그리스와 트로이(터키)간에 10년간 벌인 전쟁인
        트로이( Troy) 전쟁 ( BC 1240 년 ~ BC 1230 년 )에서 승리로 이끈 그리스 장군의 후손이라고 한다.

        고대 로마인의 신분은 귀족 (Nobiles) 과 서민 (Plebes)으로 엄격히 분리되어 있었다.


      로마 공화국 시대 ( BC 508 년 ~ BC 27 년 )

        BC 508 년부터 비록 귀족과 원로들이 정치와 권력을 독점하였지만 공화정으로 가는 길을 터놓았다.
        포에니 전쟁 ( BC 264 년 ~ BC 146 년 )을 치르면서
        귀족과 평민이 법률상 평등해짐으로써 완전한 공화국시대를 맞이 하였다.

        포에니( Poeni ) 전쟁 ( BC 264 년 ~ BC 146 년 )

          120년 사이에 로마와 북 아프리카의 카르타고( 페니키아의 식민지 ) 왕국 간에 3번에 걸친 전쟁이었다.
          제1차 포에니 전쟁 (BC 264 년 ~ BC 241 년) -- 23 년간
          제2차 포에니 전쟁 (BC 218 년 ~ BC 201 년) -- 17 년간
          제3차 포에니 전쟁 (BC 149 년 ~ BC 146 년) -- 3 년간

          3차례 전쟁에서 모두 로마가 승리 함으로써,
          카르타고는 멸망하였으며, 지중해의 패권은 로마가 차지하게 되었다.

          포에니(Poeni) 전쟁의 승리로 로마는 북 아프리카의 카르타고 뿐만 아니라
          그리스(Greece)도 정복하여 식민지로 만들어 버렸다.


        씨저스 ( Gaius Iulius Caesar - 가이우스 율리우스 씨저스 ; BC 100 년 ~ BC 44 년 ) -- 고대 로마의 정치가, 장군

          BC 100 년 ( 또는 102 년 ) : 로마에서 태어남

          BC 86년  : <코르넬리아 킨닐리아>와 결혼
          BC 82년 ~ BC 81년 : 로마를 떠나 소아시아 식민지에서 <미누키우스> 총독 아래서 참모로 근무

          BC 69년 : 첫번째 아내 <코르넬리아> 죽음
          BC 65년 : 행정관 선출

          BC 63년 : 법무관에 선출  / < 폼페이아>와 결혼
          BC 62년 : <폼페이이>와 이혼
          BC 59년 : 집정관직 선출 / <칼푸르니아>와 결혼

          BC 58년 ~ BC 51년 : 갈리아 ( 현제의 프랑스, 스위스, 벨기에 지역 ) 전쟁에 참가하여 승리
          BC 49년 ~ BC 45년 : 정치적인 경쟁자였던 <폼페이우스>와 내전을 치뤄 승리

          BC 47년 : 이집트 원정 및 클레오파트라 7세 만남
          BC 45년 : 로마 귀환 / 네번째 집정관직 (단독)
          BC 44년 : 종신독재관 취임 / 3월 - 암살당함


<< 로마의 영토 확장 >>

BC 218년 이탈리아 전역 차지
BC 113년 그리스, 스페인 차지
BC 44년 프랑스, 리비아, 터키 차지
AD 14년 이집트, 오스트리아, 동유럽 차지
AD 117년 영국, 북부 아프리카지역 차지

      로마 제국 시대 ( BC 27 년 ~ AD 395 년 )

        씨저스의 조카 손자인 <옥타비아누스>가
        로마 최초의 황제 아우구스투스로써 모든 권력을 잡고 로마를 통치하던 때부터 로마 제국이라고 부른다 ( BC 27 년 ).

        옥타비아누스 ( Octavius ) = 아우구스투스 ( Augustus ) = 로마 제국의 초대 황제 ( BC 63 년 ~ AD 14 년 )

          BC 63 년 옥타비아누스는 로마 제국의 지방 소도시인 벨레트리에서
          기사 신분에 속하는 <가이우스 옥타비우스>와 율리우스 씨저스의 질녀인 <아티아>의 아들로 태어났다.

          BC 47 년 율리우스 씨저스가 아프리카로의 원정 전쟁에 참여 할 때 수행하였다.

          BC 44 년 옥타비아누스가 19세가 되던 해에 씨저스가 암살된 직후 공개된 유언장을 통해
          옥타비아누스는 율리시스 씨저스의 양아들이 되었다.

          BC 43 년 <옥타비아누스>는 <안토니우스( Antonius )> < 레피두스>와 협정을 맺고 삼두정치를 시작하였다.

          BC 32년 삼두정치를 끝내고 <옥타비아누스>는 <안토니우스( Antonius )>와 전쟁을 선포하였다.

          BC 31 년 옥타비아누스는 <안토니우스-클레오파트라> 연합군을 그리스(Greece) 악티움( Actium ) 앞바다에서
          적은 군사와 함선들에도 불구하고 옥타비아누스는 승리를 거두었다 --- 악티움 ( Actium ) 해전
          그리스(Greece) 악티움( Actium ) 해전에서 패배한
          <클레오파트라( Cleopatra )>와 <안토니우스( Antonius )>는 이집트로 달아났다.

          BC 30 년 옥타비아누스 군대가 이집트를 정복하자 <안토니우스>와 <클레오파트라>는 자살하고 말았다.
          이때부터 이집트는 로마 제국의 식민지가 되었다.

          BC 27 년 옥타비아누스는 <아우구스투스>라는 칭호와 함께 로마 초대 황제에 등극하였다.

          AD 14 년 옥타비아누스가 죽고 그의 사위였던 <티베리우스>가 로마의 제 2대 황제가 되었다.


        로마-유대 전쟁 ( 유대 독립 전쟁 : 66 년 ~ 135 년 )

          로마 제국의 지배에 저항하여 유태인들이 3차례에 걸쳐 벌인 독립전쟁
          1차 유대 독립전쟁 ( 66 년 ~ 73 년 )
          2차 유대 독립전쟁 ( 115 년 ~ 117 년 )
          3차 유대 독립전쟁 ( 132 년 ~ 135 년)

          이 전쟁으로 로마군이 예루살렘을 함락시키고, 성전을 불태우고, 유태인들의 저항군대를 진압했다.
          이 전쟁의 폐배로 유대인은 자신의 국가를 잃어버리고 세계 각지로 흩어지게 되었다.


        로마의 쇠퇴기 ( 200 년 ~ 395년 )

          AD 200 까지 로마는 전쟁이 없고 평화가 계속되어서
          정치적으로 안정이 되었으며, 경제적으로도 크게 번영하였다.
          그런데 AD 200 년부터 로마는 도덕적으로 타락하여 사치와 향락에 빠지고 로마 제국은 쇠퇴기로 접어든다

          330 년 로마 황제 <콘스탄티누스>가 수도를 이탈리아 로마에서
          콘스탄티노플(Constantinople -- 지금의 터키 이스탄불 )로 옮기고
          정치의 혁신과 함께 왕권을 강화하여 제국을 다시 한번 일으켜 세울려고 했지만 뜻을 이루지 못했다.


      동 로마제국 / 서 로마제국으로 분열 ( 395 년 )

        395년 <테오도시우스> 황제가 죽고 로마 제국은 동 로마제국과 서 로마제국으로 양분되는데,
        동로마제국은 큰 아들인 <아르카디우스>가 통치하고,
        서로마제국은 작은 아들인 <호노리우스>가 통치하였다.


<< 분리된 동로마 제국과 서로마 제국의 영토 >>

      서 로마 제국의 멸망 ( 476 년 )

        395년 로마 제국이 동로마제국과 서로마 제국으로 분리 된 이후에
        서로마 제국은 끊임없이 게르만족을 비롯하여
        주변의 여러민족 ( 색슨족, 프랑크족, 부르군트족, 수에비족, 반달족, 훈족, 서고트족)으로부터 침입을 받다가,
        476년에 게르만족의 용병 대장 <오도아케르>에 의해
        로마의 마지막 황제인 <로물루스 아우구스툴루스>가 암살되면서 서로마는 멸망하였다.

        서로마제국은 로마 가톨릭 문화 보급에 힘쓰고, 유럽 문화의 형성에 이바지한 점이 특색이다.


      동 로마 제국의 멸망 -- 비잔티움 제국의 멸망 ( 1453 년 )

        395년 로마 제국이 동로마제국과 서로마 제국으로 분리 된 이후에 동로마 제국은 수도를
        콘스탄티노플(Constantinople -- 그리스시대에는 비잔티움(Byzantium)이라 했음 -- 지금의 터키 이스탄불 )으로 하여
        1000 년간 이 지역을 강력한 중앙집권적 국가체계로 통치하였다.
        그래서 동로마제국을 비잔틴 제국, 혹은 비잔티움 제국이라고도 부른다.

        동로마제국은
        정치적으로는 로마의 이념과 제도를 이어받고,
        문화적으로는 헬레니즘을 기조로 했으며
        생활적인 면에서는 그리스의 전통을 많이 따랐고,
        종교적으로 그리스도교(기독교)를 국교로 삼았다.

        비잔티움 제국은 1453년 오스만 투르크제국의 침략으로 수도인 콘스탄티노플이 점령당하고 멸망하게 되었다.


      서로마 제국의 멸망( 476 년 ) ~ 이탈리아 통일 왕국 수립 ( 1861 년 )

        476년 게르만족의 용병대장 <오도아케르>은 로마를 정벌하여 서로마제국을 멸망시키고,
        이탈리아의 실질적인 지배자가 되었다.

        481년부터 이탈리아 북쪽 지방은 게르만족이 건설한 프랑크 왕국의 지배를 받았다.

        그후 이탈리아 역사는 다양한 통치체제에 의해 정치적 통일을 이루지 못하고
        권력의 이합집산이 계속되는 과정을 겪다가
        1861년 이탈리아 통일 왕국에서 이탈리아를 통일하여 통치하기 시작했다.


      프랑크 왕국 ( 481 년 ~

        프랑크 왕국은 게르만족의 한 부족인 프랑크족이
        481년 현재의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를 포함하는 지역에서 세운 왕국으로
        로마제국이 멸망한후 400년간 유럽 전체를 통치하였다.

        814년 카알 ( Karl ) 대제가 죽은 후 프랑크 왕국의 아들 3형제에 의해
        동프랑크(독일 지역), 서프랑크(프랑스 지역), 서프랑크 (이탈리아 북부)로 나누어졌다.


      시칠리아섬의 역사  

        이탈리아 남쪽의 시칠리아 섬은
        BC 1200 년 ~ BC 900 년 사이에는 페니키아 제국의 지배를 받았고,
        BC 800 년 부터는 그리스의 지배를 받았고
        BC 135 년 부터는 로마의 지배를 받았고,,,,
        476 년 서로마제국이 멸망한 이후에는 반달족, 동(東)고트족, 비잔틴 제국 ( 동로마제국 )의 지배를 받다가,
        827 년 부터는 튀니스의 이슬람 세력의 지배를 받았고,,
        1059 년 부터는 노르만족이 지배한 시칠리아 왕국 ( 1071 년 ~ 1860 년 )의 지배를 받다가
        1860 년 부터는 이탈리아 왕국으로 흡수 통합되었다.

        827년 튀니스의 이슬람 세력이 이탈리아의 남쪽의 시칠리아섬에 상륙하여
        기독교의 비잔틴의 지배아래 있던 시칠리아 섬을 정복하고 이슬람교의 문화를 만들었다.

        1059년 로마 교황 ( 니콜라오 2세 )는 노르만족 출신의 <로베르토 기스카르>를 시칠리아의 공작으로 임명하였다.
        이때부터 시칠리아 섬에서는 이슬람문화가 사라지고 기독교 문화로 변하면서
        여러 왕조가 흥망을 거듭하면서 시칠리아를 통치하였다.
        1860년 시칠리아 왕국은 새로 생긴 이탈리아 왕국으로 흡수 통합되었다.


      이탈리아 통일왕국 ( 1861 년 ~ 1946 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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