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텔

관광 코스

쑈 안내

카지노

컨벤션

한인사회

게시판

예약

쑈핑

풍수

당(唐)나라와 싸워 이긴 신라 --- 문무왕이 세운 절(寺) 사천왕사(四天王寺)

        신라가 당(唐)나라의 군대를 이용하여 백제와 고구려를 멸망시켰으나
        당(唐)나라가 신라까지 먹으려고 하였다.
        그래서 신라는 당(唐)나라와 670 년 부터 676 년 까지 7년간 전쟁을 치르는데
        이 전쟁에서 승리함으로써 신라에 의한 삼국통일이 완성되었다.

        660 년 : 백제 멸망
        661 년 : 신라의 태종무열왕(太宗武烈王)이 죽고 큰 아들인 문무왕(文武王)이 즉위
        668 년 : 고구려 멸망
        670 년 : 신라(新羅)와 당(唐)나라의 전쟁 시작
        671 년 : 사천왕사(四天王寺) 건립
        676 년 : 신라(新羅)와 당(唐)나라의 전쟁 끝 --- 신라의 승리
        681 년 : 신라(新羅)의 문무왕(文武王) 사망
        682 년 : 문무왕의 업적을 기록한 문무왕릉비 ( 文武王陵碑 )를 사천왕사(四天王寺)에 건립
        682 년 : 감은사(感恩寺) 완공

        참고 : 신라에 의한 삼국통일 과정

        사천왕사(四天王寺)

          사천왕사(四天王寺)는 신라(新羅)의 문무왕(文武王) 시절이었던
          671 년 당군(唐軍)의 침입을 막아내기 위해
          명랑법사(明朗法師)가 낭산(狼山) 남쪽 신유림(神遊林)에 절(寺)을 세우고 문두루비법(文豆婁秘法)을 행하니
          당(唐)나라의 배(船)들이 갑작스런 풍랑에 침몰 되었다.
          문무왕(文武王)은 절(寺)을 크게 고쳐 짓고 절(寺)의 이름을 사천왕사(四天王寺)라고 했다.

          사천왕사(四天王寺)는 절(寺)의 마당에 2개의 탑(塔)을 세우는
          통일신라의 전형적인 사찰의 형태인 < 일금당 이탑 (一金堂 二塔) >의 양식으로 된 절(寺)이다.

          비록 절(寺)의 건물들은 모두 없어졌지만 절터에는 건물의 기초석들이 그대로 남았있고
          또 절(寺)의 마당에는 679년에 세워진 2개의 목탑(木塔)이 있었는데
          나무(木)로 만들어진 탑(塔)은 없어지고 탑(塔)이 세워진 자리의 심초석만 남아 있었다.

          또 절터에서 682 년에 세워졌던 문무왕릉비 ( 文武王陵碑 )의 조각들이 발견되었다.


        문무왕릉 ( 文武王陵 ) = 대왕암(大王岩)

          당(唐)나라와 전쟁을 승리하여 삼국 통일을 완수한 문무왕(文武王)이
          681년 죽으면서 유언을 하였는데,
          자신의 시신(屍身)을 불식(佛式)에 따라 고문(庫門) 밖에서 화장하여 유골을 동해에 묻으면,
          용이 되어 동해로 침입하는 왜구를 막겠다고 하였다.
          유언에 따라 유해를 동해 바다의 바위에 장사지냈다 그리고 그 바위를 대왕암(大王岩)이라고 불렀다.

          아들인 신문왕(神文王)은
          대왕암(大王岩) 근처에 감은사(感恩寺)를 건립하고,,,
          대왕암(大王岩)이 바라다보이는 언덕 위에는 이견대(利見臺)를 건립하였다.


        문무왕릉비 ( 文武王陵碑 )

          조선 시대 경주부윤을 지낸 홍양호가 지은 이계집(耳溪集)이라는 책에서
          1796 년 사천왕사(四天王寺) 절터에서 문무왕릉비 ( 文武王陵碑 )의 조각들을 발견하여
          이 조각들을 탁본을 떠서 청(靑)나라 금석학자였던 유희해(劉喜海)에게 보냈는데,
          이것을 연구한 유희해(劉喜海)는 자신이 쓴 책 해동금석원(海東金石苑)에 그 내용을 기록하였다.

          당시 발견되었던 조각들은 그 이후 있는 곳이 묘연했으나,
          1961년 비석의 하단 부분이 경주시 동부동에서 발견돼 국립경주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있고,
          2009년 비석의 상단 부분이 경주시에 있는 어떤 주택의 수돗가에 박혀 있었던 것이 발견되었다.


        감은사(感恩寺)

          681 년 문무왕(文武王)이 죽고 아들인 신문왕(神文王)이 즉위하여
          아버지의 은혜에 대한 감사하는 마음으로 절(寺)을 크게 고쳐 건립하였는데
          682년 절(寺)을 완공하였고, 절(寺)의 이름을 감은사(感恩寺)라고 했다.

          이 절터에는 돌로 3층으로 만든 탑(塔)이 동쪽과 서쪽에 2개가 남아 있는데
          이 탑(塔)을 감은사지 삼층석탑(感恩寺址 三層石塔)이라 한다.

           

Copyright © 2005   LasVegasKim.com   All Rights Reserved ( 무단 복제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