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 원주민 인디언 ( Paiutes 족 ) 들이 살았던 이곳은 인디언과는 상관 없이
미국과 멕시코가 전쟁 ( 1845년 - 1848년 )을 하여 미국이 이기는 바람에
1848년 5월 30일 부터 당시의 멕시코(스페인) 영토였던
텍사스, 캘리포니아, 네바다, 유타, 아리조나, 뉴 멕시코 등지의 땅들이 미국의 땅으로 편입되어 버렸다.
이곳도 마찬가지로 이때 부터 정식으로 미국의 땅이 되어 버렸다.
1850 년대에는 이웃한 유타(Utah)주에서 몰몬(Mormon)교도들이 자주 왕래하였고,
1863 년 인디언들과 물물교환 형식으로 통상을 하는 과정에서
파나카(Panaca)에 살고 있었던 인디언( Paiutes 족 )들이 다량의 은(Silver)을 내놓았다.
그래서 서양인(미국인)들은 이곳에서 은광이 있음을 짐작하게 되었다.
인디언( Paiutes 족 )들의 말로 파나카(Panaca)는
<< Pan - Nuk - Ker >> 또는 << Panacker >> 에서 유래 되었다고 하는데
그 뜻은 << Metal - Money - Wealth >> 라고 한다.
그러니 이곳에 살았던 인디언들도 이곳에 은(Silver) 이 있었음을 알았다.
노예문제로 야기된 미국의 남북 전쟁 ( 1861 년 ~ 1865 년 ) 이 끝나면서
미국은 금광산 개발과 함께 본격적인 서부 개척의 시대를 맞이하는데,
원주민 인디언들을 몰아내고 서양인(미국인)들이 이곳을 차지하여 본격적인 은광개발을 하게 되었다.
서양인들이 처음으로 이곳에 들어와 은광을 개발하기 시작한 것은 1864 년이었다.
1869년 < Francois Pioche > 이라는 사람이 정식으로 이곳에 정착하게 되었는데,
그후 이곳을 그의 이름을 따서 < Pioche > 라고 하였던 것이다.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광산을 개발하게 되는데,
양질의 은(Silver)과 철광석(Ore) 이 다량 생산되자 일확천금을 노리는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었고
1872 년에는 인구 6,000 명의 도시로 발전하였다.
1876 년에는 인구 10,000 명의 도시로 까지 발전하였으나,
이때부터 은(Silver)의 생산량이 줄어 들면서 도시는 더 이상 발전하지 못하고 서서히 쇠퇴해 갔다.
이곳에서는 대형 사건 사고가 많이 발생하였다.
1871 년 화재사고로 보관중에 있던 화약 ( 300 파운드 )이 타는 바람에 수십명의 인명피해가 발생하였고,
1872 년 5월에는 화재로 마을의 집 12채가 전소되었고,
1873 년 8월에는 폭우가 솟아져서 마을 전체가 홍수의 피해를 보았고,
1876 년 5월에는 화재사고로 마을의 집 21채가 전소되었다.
미국의 서부 개척시대때 다른 지역에서 와서 총싸움하다 죽은 사람들은
연고자가 없어서 그 마을의 일정한 장소에 뭍어두는데 이런 곳을 < Boot Hill > 이라고 한다.
미국 서부의 많은 도시들이 < Boot Hill > 이라고 공동묘지를 가지고 있다.
구두( Boot )를 신은 채로 죽어 그대로 묻는다고 붙여진 이름이라고 하기도 한다.
이곳 피오취(Pioche) 에도 < Boot Hill > 이라는 공동묘지가 있는데
75명의 총잡이 ( Gun Fighter ) 들이 뭍혀있을 정도로 당시 이곳은 험악한 도시였었다.
또 이곳에서는 수많은 살인 사건들이 끊임없이 일어났던 곳이기도 하다.
1895년 건립된 Mountain View Hotel 이 있는데,
1930년 당시 대통령이었던 < Herbert Hoover > 대통령이 머물다 갔다고 한다.
지금은 더이상 호텔로 사용되고 있지는 않지만 건물은 구경할수 있다.
당시 호텔 건물을 지금도 호텔로 사용하고 있는 것은 방이 14개인 < Overland > 호텔이다.
1 차 세계대전 ( 1914 년 ~ 1918 년 ) 과 2차 세계대전 ( 1939 년 ~ 1945 년 ) 때까지
미국 군대에서 사용되었던 깡통 ( Can ) 의 원료로
이곳에서 생산되었던 납( Lead )과 주석 ( Zinc ) 등이 사용되었는데,
전쟁이 끝나고 수요도 줄었지만, 경제성(생산성)이 따라가지 못해 광산이 폐쇄되었다.
광산이 폐쇄되면서 도시 규모는 점점 작아져서
지금은 초라한 시골 마을로 전락하여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