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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수를 공부한 사람들

      한국 풍수지리의 창시자인 도선국사(道詵國師) ( 827 ~ 898 )

        신라시대 말기에 전남 영암에서 출생하여 일찍이 중(승려)이 되어
        화엄사에서 불교에 대한 공부를 많이 하였다.

        23세 때인 850년에는 穿道寺에서 具足戒를 받았으며,
        그뒤 雲峯山에 굴을 파고 수도생활을 하였고,
        37세때인 864년에는 玉龍寺를 중수하여 그후 죽을때까지 이곳에서 지냈다고 한다.

        역사의 기록을 보면 도선국사가 당나라에 유학하여
        당나라의 일행선사를 만나 풍수지리를 배웠다고 적혀있으나,
        도선(당나라 말기)이 살아 있을 시기에는
        일행선사(당나라 초기 사람)는 벌써 죽은 후인 시대임으로
        이 기록은 시기적으로 맞지 않는 모순이 있다.


      한양을 조선의 도읍지로 정한 무학 대사 ( 1327 ~ 1405 )

        경남 합천 출생, 이름은 박자초(朴 自超), 1327. 9월 20일 생,
        18세 출가하여 묘향산 등지에서 수도하다가
        1353년 중국 연경으로 유학. 중국에서 인도의 고승 지공선사로 부터 사사.
        1356년 귀국.
        1392년 고려가 망하고 조선이 건국됨 / 태조 이성계에 의해 왕사로 책봉됨.
        1397년 (태조6년) 무학의 부도탑을 회암사 북쪽에 만듦.
        1398년 용문사에 머물었음
        1403년 금강산 진불암에 머물었음
        1405년 (태종 5년) 입적

        고려말부터 조선 시대 초기에 살았던 유명한 고승
        태조 이승계를 도와 한양에 도읍지를 정하는 일을 하게 되었음

        (일화1)
        무학대사와 이성계 사이에 있었던 이야기인데,
        이성계가 조선을 건국하고 나서 안정이 되자 잔치를 베풀었다.
        무학대사도 초대되어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태조는 무학대사에게 “스님은 꼭 돼지처럼 생겼습니다.” 하고 농담을 했다.
        이에 무학대사는 “대왕은 꼭 부처님 같습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태조 이승계가 그 이유를 물어보니 무학대사는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돼지의 눈에는 모두 돼지로 보이고, 부처의 눈에는 모두 부처로 보이는 법입니다.”

        (일화2)

        무학대사가 도읍지를 찾지 못하고 한양근처를 돌아 다닐때
        어떤 농부가 밭을 갈면서 소를 보고 하는말이
        "" 이랴! 이 무학이보다 미련한 놈의 소야 " 하는 것이 아니가 ?
        깜짝놀란 무학대사가 그 농부에게 사정이야기를 하고 도읍지를 찾고 있다고 하니까
        농부가 하는말이
        "" 십리를 더 가보라고 했다 "
        무학대사가 십리를 더가서 결정한 자리가 지금의 경복궁자리라고 한다.
        그때 농부에게서 말을 들었던 곳의 지명은 그때부터 왕십리라고 했다고 한다.

        (일화3)
        태조 이승계가 무학대사의 도움으로 한양을 도읍지로 정하고 궁궐을 건설할때 인데
        건설중인 궁궐이 이유없이 자꾸 허물어져 내리는 것이 아닌가.
        상심한 무학대사가 길을 가고 있는데, 어떤 농부가 밭을 갈면서 소를 보고 하는말이
        "" 이랴! 이 무학이보다 미련한 놈의 소야 " 하는 것이 아니가 ?
        깜짝놀란 무학대사가 그 이유를 물어보니 농부가 하는말이
        " 한양 땅은 학(鶴)의 터인데, 학의 등에 무거운 물건(궁궐) 을 올려 놓으려고 하니까
        학(鶴) 이 날개를 치니까 무거운 짐(궁궐)이 땅에 떨어지는것이 아닌가,
        그러니 궁궐부터 짓지말고 담장인 성(城)부터 건설하면 될것 아닌가 " 라고 말했다.
        무학대사가 그 말대로 하니까 공사는 아무일없이 순조롭게 진행되었다고 한다.


      국립묘지의 터를 정한 지창룡(池昌龍) (1922~1999)

        태백산 근처의 봉화에서 홀로 기도를 하는 생활을 하였는데,
        꿈에 죽은 조상들이 나타나서 풍수를 가르켜주었다.
        이렇게 3 년을 공부하고 난후 그는 땅속을 볼수 있는 능력을 가졌다고 한다.

        해방후 대한민국이 건국될 당시에 한국풍수계의 최대 풍수사였다.
        정부중앙청사 자리를 잡았으며, 동작동 국립묘지 자리를 정했으며,
        대전의 국립묘지 자리, 그리고 포항종합제철공장의 터도 잡아 주었다.

        한국최대 갑부였던 삼성 그룹의 이 병철 회장의 산소 자리도 잡아 주었다.
         

      육관도사 손석우(孫錫宇) (1928 ~ 2005)

        1928년생인 그는 경북 울진 출생으로 오대산 적멸보궁에서 기도를 하던 중
        땅속을 훤히 들여다 볼수 있는 능력을 얻었다고 한다.
        그런 귀신 같은 눈 ( 신안 / 神眼 ) 으로
        생기가 뭉치는 혈(穴) 자리를 정확하게 찾아내고,
        패철을 사용하지 않고도 정확하게 좌향을 잡아낸다.

        전주 모악산에 있는 김일성 조상 ( 김태서의 묘 )의 묘를 보고
        김 일성의 죽음( 재위 49년만에 죽는다고 말함 ) 을 예언했는데 적중했다고 한다. 
        또 앞으로 지구촌을 통치하는 대제왕이 한국에서 나온다고 예언했다.

        소설 "터" 의 원작가이다.

        전두환 장군의 장인의 묘를 이장 시켜줘서 나중에 전두환 대통령이 될수 있었다.

        김대중에게 조상의 묘를 이장하면 대통령이 될수 있다고 하여
        김대중 조상의 묘를 이장해주었다 그리고 난후 김대중은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하지만 자신의 무덤은
        풍수에서 가장 꺼리는 수맥이 지나는 자리라고 사람들이 말한다.


      서울대 교수 출신의 최창조

        1950년 서울 출생
        1968년 경기 고등학교 졸업
        1975년 서울대 문리대 지리학과 및 동 대학원 졸업
        1978년 국토개발연구원 주임 연구원
        1979년~1992년 : 청주사대, 전북사대, 서울대 지리학교수

        서울대에서 지리학을 공부하였으며, 서울대에서 풍수학 교수로 재직했었다.
        지리를 공부한 학자로써 풍수지리에 대한 책을 많이 저술하였다.

        " 한국의 풍수 사상 "  
        " 좋은 땅이란 어디를 말함인가 "
        " 북한 문화유산 답사기 "
        " 땅의 눈물, 땅의 희망 "


      김두규

        다음과 같은 책을 저술하였다.
        " 한국풍수의 허와 실 "
        " 우리땅 우리 풍수 "
        " 조선 풍수학인의 생애와 논쟁 "


      고제희

        성균관대학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고려대학교에서 환경공학을 공부하여 석사, 박사 학위를 받았다.

        " 한국의 묘지 기행 " " 쉽게 하는 풍수 공부 " 등의 책을 저술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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