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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남미의 원주민 인디오


<< 남미 페루에 살고 있는 인디오 여인의 모습 >>

<< 우리나라 사람의 얼굴과 너무나 닮아 있어서 꼭 이웃집 아줌마 같군요 >>

      인디오 ( Indio )

        유럽인들이 아메리카를 발견하기전에는
        남북아메리카에는 우리와 같은 민족 계통인 사람들이 살고 있었다.

        유럽인들이 처음으로 미국(아메리카)에 왔을 때 그들은 그곳이 인도(India)인줄 알았다.
        그래서 그곳에 살고 있는 원주민 사람들을 인디언 (Indian)이라고 불렀는데,
        미국(북 아메리카)의 원주민들은 영어식으로 인디언(Indian)이라고 불러졌고
        라틴 아메리카 (중남미 아메리카)의 원주민들은 스페인말인 인디오(Indio)라고 부리우게 되었던 것이다.

        우리가 보통 인디오라고 부르는 대표적인 종족들은 다음과 같다.
        멕시코지역에서 아스텍왕국을 이루며 살았던 아스텍 ( Aztec )족,
        멕시코를 포함한 중앙 아메리카에서 마야왕국의 마야 ( Maya )족,
        남미 페루 지역을 중심으로 잉카제국을 건설한 잉카 ( Inca ) 족 ( 또는 케추아 ( Quechua )족이라고 부름 )
        남미 페루 지역에서 남쪽지역에 살았던 아이마라 ( Aymara ) 족
        또 남미 페루 지역에서 북쪽지역에 살았던 창카족

        영국을 중심으로 한 세력들이 지배한 북미(미국)은 인디언들과 백인 사이의 인종의 혼합이 적었지만
        스페인을 중심으로한 세력들이 지배한 중남미 (라틴 아메리카) 인디오들과 백인사이의 인종적인 혼합이 심한편이었다.
        스페인과 포르투칼에서 온 백인과 원주민인 인디오의 혼혈인 사람들을 메스티소 ( Mestizo )라고 불리우는데
        숫자도 많고 백인과 인디오 사이의 중간적 존재로 변모하게 되었다.

        메스티소 ( Mestizo ) 사람들은
        멕시코를 비롯하여 페루, 볼리비아, 에콰도르, 콜롬비아, 베네수엘라 등에 많으며,
        총 인구의 60∼70%, 나라에 따라서는 90% 이상을 차지하는 곳도 있다.

        이것은 우리나라가 일제시대때 당한 정신대 (위안부)와는 상대가 되지 않을 정도로
        큰 민족적인 문제임에 틀림이 없다.
        그런데 왜 아무도 이런 말을 하지 않는 것일까 ???
        이렇게 답답한 심정을 달랠때 부르는 노래가 있지요 ---- << 아리랑 ( Arirang ) >>


      잉카 문명의 자취

        초기 문명 ( BC 3800 년 ~ BC 1600 년 )

          BC 3800 년경부터 BC 1600 년까지 지금의 페루 해안지역에서 수페족들이
          그물을 이용해 고기를 잡았고,,,,
          관개농법으로 과수와 목화 및 다양한 채소를 재배했으며,,,,,
          돌로 피라미드를 쌓기도 했다

          그런데 BC 1600년경에 지진과 해일, 모래폭풍 등 자연재해로 초기 문명이 멸망한 것으로 밝혀졌다.
          미국의 플로리다 주립대학에서 이 지역의 지질을 연구, 조사결과에 따르면
          당시 대규모 지진으로 벽과 바닥이 무너지고, 주변 계곡에서 산사태가 일어났으며,
          그 뒤 큰 홍수가 덮쳐서 어느날 갑자기 문명 사회의 모든 것이 한꺼번에 무너져 버렸다고 밝혔다.


        금(金) 목걸이

          BC 2000 경에 제작된 금(金)으로 만든 목걸이가 2001년 페루 티티카카 호수 근처에서 발견되었다.
          이것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금(金) 목걸이로 인증되고 있다.

          BC 2000 년경이면 지배 계층이 생겨나고 국가의 형태를 이루기 시작하는 청동기 시대인데,
          이때 지배계층의 신분을 나타내기 위한 금(金)으로 만든 장식물이 사용되었던 것이다.


        신전 ( 神殿 )


<< 돌을 쌓은 모양 --- 지진에도 꺼떡없도록 만들었다 >>

  
<< 쿠스코 (Cusco)인근에 있는 잉카의 유적지 >>

          잉카 문명의 중심지였던 페루의 쿠스코 (Cusco) 라는 곳에는
          BC 2000 년경에 만들어진 태양 신(神)에게 재사를 지내는 신전(殿)들이 많이 있었다.

          이들 신전(殿)들이 있던 자리에 스페인 정복자들은 신전들을 허물고 카톨릭 성당을 세웠다.


<< 쿠스코 (Cusco)에 있던 잉카의 신전(殿)을 허물고,,, 스페인 정복자들이 건설한 성당의 모습 >>

      잉카 제국 ( Inca Empire - 1438 ~ 1532 ~ 1572 )

        잉카 문명은 차빈, 모니카, 나스카, 티아우아나코 등의 문화가 번성하였다.
        AD 1200년 경 부터는 왕(王)이 나라를 다스리는 왕국(王國)의 형태로 발전하는데,
        그 중에서 가장 강대하였던 것은
        페루 북해안 지방의 찬찬(Chan Chan)이라는 대도시를 중심으로 하여 치무(Chimú) 왕국이었다.

        이러한 여러 왕국(王國) 중에서
        13세기에 잉카족이 지금의 페루 남부에 있는 안데스 고원()의 쿠스코 (Cusco) 라는 곳을 중심으로 번성하게 되었다.
        초대 왕인 만코 카팍으로 시작하여 15세기 초에는 제9대 파차쿠티 (Pachacuti) 황제까지 이어진다.

        이들이 사용한 언어를  케추아(Quechua)어 라고 한다.
        이말은 아주 일부의 소수의 사람들에 의해서 아직도 사용되어지고 있다고 한다.
        << 참고 : 한국의 언어 학자들이 어서 가서 이말을 연구하시면 한글과 같은 계통의 언어라는 것이 밝혀질 겁니다 >>

        1438년 파차쿠티 (Pachacuti) 황제가 이끄는 잉카(Inca)의 군대들은
        남쪽지방에 있던 창카족과의 전쟁에서 승리하여 넓은 영토를 차지하고 국가적인 통치기반을 확고히 하게되었는데,
        이때부터 잉카제국이 멸망하는 시기( 1572년 ) 까지를 잉카 제국( Inca Empire ) 라고 불리운다
        또 파차쿠티 왕(王)은 남쪽의 티티카카 지방의 아이마라족도 정복하고 주변의 여러 나라들을 차례로 정복하였다.
        이때 페루 북쪽에 있던 가장 강성한 치무 왕국까지 정복하여 안데스 산맥의 모든 지역에 걸친 통일국가를 형성하였다.
        군사적인 정복과 함께 각지방의 도로를 정비한 파차쿠티 (Pachacuti) 왕(王)은 1474년경에 죽었다.

        다음의 잉카제국의 황제가 된 유팡퀴 황제도 정복사업을 계속하여,
        에콰도르(Ecuador),  콜롬비아 (Colombia) 지역과 칠레( Chile), 아르헨티나 (Argentina)의 북부도 잉카의 영토가 되었다.
        이때부터 잉카(Inca) 제국의 급속한 발전을 가져오게 되었다.
        유팡퀴 황제는 1493년경에 죽었다.

        다음의 황제는 와이나 카파크 황제였는데 영토 확장보다는 내치에 힘쓰다가 1525년 죽게 되자,
        두명의 아들인, 우아스카르 ( Huáscar ) 와 아타우알파 (Atahualpa)의 형제가 서로 대립하여 싸웠는데,
        1532년 아타우알파 (Atahualpa)가 승리하였다.

        1531년 프란시스코 피사로 ( Francisco Pizarro )가 이끄는 스페인 정복자들이 페루(Peru)에 침입하여,
        1532년 북고지()의 도시 카하마르카(Cajamarca)에서 형제간의 전쟁에서
        승리하여 축제를 즐기고 있는 아타우알파 (Atahualpa)를 스페인 정복자들이 체포하여 죽여 버렸다.
        1534년 스페인 군대들은 잉카제국의 수도인 쿠스코 (Cusco)를 정벌하게 되었다.

        1535년 프란시스코 피사로 ( Francisco Pizarro )가 이끄는 스페인 정복자들이
        페루(Peru)의 리마(Lima)를 근거지로 삼아 이 일대를 스페인의 식민지화 하였다.
        당시 스페인이 지배한 영토는
        중남미의 대부분의 지역으로써 지금의 Colombia, Ecuador, Panamá, Venezuela 등이었다.

        스페인 식민지 정부에서는 아타우알파 (Atahualpa)의 동생인 만코 ( Manco )를
        잉카제국의 황제로 하여 잉카를 통치하도록 하였다가,
        1572년 당시 잉카제국의 황제였던, 만코 ( Manco )의 아들인,
        Túpac Amaru를 잡아 죽임으로 잉카제국은 영원히 멸망하고 말았다.

        안데스 고산지대에 터을 잡고 살아온 잉카인들은 당시 철기 무기를 사용하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철제무기가 없는 잉카족과 총을 가진 스페인 군대와의 전쟁은 전쟁이 아니었던 것이다.

        잉카제국이 멸망할 당시 잉카족의 숫자는 1,200 만명이었는데
        45년뒤에 스페인 식민지 정부에서 인구 조사할 때 잉카족의 숫자는 110만명이었다고 하니
        스페인 군대들이 잉카족을 얼마나 무참하게 죽였는지 알수 있는 통계이다.

        특히 스페인 군인들은 남자들만 죽이고 여자들은 자신의 성의 노예로 이용한 것이지요
        그래서 오늘날 중남미에는 메스티소 ( Mestizo )이라고 불리우는 혼혈족들이 많은 것이지요.

        우리 형제들의 처참한 죽음에 대해서 왜 아무도 이야기 하지 않는거죠 ??
        이런 것 연구하는 한국 학자들은 없는 겁니까 ??
        이렇게 답답한 심정을 달랠때 부르는 노래가 있지요 ---- << 아리랑 ( Arirang ) >>


      잉카 ( Inca ) 제국의 언어

        케추아(Quechua)어 :

        잉카(Inca) 사람들은 자신들의 말을 글자로 표시하는 문자를 가지고 있었는지 확실하지는 않다.
        달리 표현하면
        문자가 있었는지 없었는지도 모를 정도로 스페인 군대들이 잉카(Inca)를 철저히 파괴해 버린 것이다.

        스페인의 정복자들이 쳐들어 오게 된 후에는 스페인 언어의 사용을 강요 당하게 되면서
        그들이 사용하는 말을 표현하는 글자는 알파벳으로 하게 되었다.
        지금도 약 700만명 정도가 케추아 (Quechua) 언어를 사용하고는 있지만,
        이들 대부분들도 일상생활에서는 스페인(Spain)말을 주로 사용하고 있는 실정이다.

        잉카의 사람들이 사용한 케추아(Quechua)말은 우리나라 말과 아주 비슷하다고 한다.
        말의 순서가 똑같고, 말도 우리말과 똑같거나 비슷한 말들이 많다고 한다.
        이렇게 비슷한 언어를 사용한 이들은 우리와 같은 뿌리의 민족이었던 것이다.


      마추피추 ( Machu Picchu ) - 잉카제국의 대표적인 유적지

        마추피추 ( Machu Picchu ) 유적지는 1450년에 건설된 잉카제국의 대표적인 유적지이다.

        마추피추 ( Machu Picchu ) 유적지는
        당시 잉카제국의 수도였던 쿠스코 (Cusco)에서 북서쪽으로 44 마일 ( 70 Km ) 정도 떨어져 있는
        페루(Peru)의 우루밤바 ( Urubamba ) 계곡의 산중턱에 있는데
        해발 7,970 피트 ( 2,430 미터 )의 고산지대이다.

        이곳을 갈려면
        페루의 수도 리마 (Lima)에서,,, 잉카제국의 수도였던 쿠스코(Cusco) 라는 도시로 가서,
        산악열차를 타고 안데스 산맥의 협곡을 따라서 3시간 정도 올라가면 마추피추 ( Machu Picchu ) 유적지가 있다.

        잉카(Inca)사람들이 이 유적지를 건설한 후 120년쯤 지난
        1572년에 잉카제국이 멸망하게 되었고, 이후로 이곳도 역사의 흐름과 함께 잊혀져 있었는데
        1911년 미국인 역사 학자인 Hiram Bingham ( 1875 ~ 1956 )에 의해 재발견되어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으며
        1983년 UNESCO에서 정한 세계문화 유산으로 등록되어져 있다.

  
<< 마추피추의 전경 >>

        안데스 고산지대에 터을 잡고 살아온 잉카인들은 당시 철기 무기를 사용하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잉카인들은 제련과 합금기술은 뛰어 났지만
        무기를 만들어 사용하거나, 바퀴같은 중요한 생활도구를 만들어 사용하지는 않았다.

        넓은 들판이 있어서 농사를 많이 짓는 것도 아니고,,,,,,
        소나 말이 있어서 가축을 이용하는 것도 아니었고,,,,
        ( 참고 : 원래 이곳에는 소와 말이 없었고, 소와 말은 스페인 정복자들이 가지고 와서 이용하기 시작했다 )
        잉카의 사람들은 험학한 산속에서 어려운 삶을 살아간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스페인 군대가 쳐들어 와서 잉카사람들이 패해서 간곳이 마추피추( Machu Picchu )이고
        그곳 산꼭대기에서 도시를 건설했다고 하는데,,,
        사실은 스페인 군대가 들어오기 100년전에 마추피추( Machu Picchu )는 건설된 것입니다.

        잉카인들이 아무것도 없는 이곳을 1450년에 돌을 쌓고 도시국가를 건설한 것은 아니고
        이미 이곳은 잉카 문명이 있기 전부터 산속의 도시가 있었던 겁니다.
        어떤 학자들은 2,000 년전부터 이 도시가 있었다고 합니다.
        그러던 이곳을 1450년 잉카 사람들이 좀더 증축하고 개축하여 지금의 모습으로 만들었다고 생각되는 것이지요

        그리고 어떤 이유인지는 모르지만
        마추피추는 오랜 세월 ( 1532년부터 1911년까지 ) 사람이 살지 않는 버려진 도시로 변하게 되었던 겁니다.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들,,,,,

        (1) 왜 이런 곳에 살았을까 ?

        (2) 어떻게 이런 도시를 만들었을까 ?

        (3) 왜 버려졌을까 ?

          추측1 : 돌림병

          추측2 : 더 안전한 장소로 집단이주


        (4) 1911년 이곳을 발견했을 당시 유골이 많이 있었는데 성인 남자의 유골은 한구도 없었고
             유골의 80%가 여자의 유골이었고 나머지 20%의 유골은 어린 아이들의 유골이었고 합니다.

          ( 추측 1 )
          당시 스페인 군대들은 남자들은 보이기만 하면 다 죽이고,,,, 여자들만 살려두었다는 증거이다.
          그 여자들을 자신들의 성의 노리개감으로 이용하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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