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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우리의 글 -- 녹도 문자 ( 鹿圖文字 ), 가림토 (加臨土) 문자, 갑골문자 (甲骨文字), 한자 (漢字)

        고대 한국 사람들이 사용했던 글자이다.


      녹도문자(鹿圖文字)

        고대 우리민족의 국가였던 배달국 시대의 제1세 배달 환웅(B.C 3,898~3,804년 재위) 시절에
        사슴의 발자국의 모습을 보고 만든 글자이다.

                                   

                                    << 경남 남해군에서 발견된 녹도 문자 >>       << 평북 연변군 묘향산의 비석에서 발견된 녹도 문자 >>

 
<< 중국 만주지방에서 출토된 토기에 새겨져 있는 녹도 문자 >>

        이것은 이집트 상형문자(B.C 3,000년경), 수메르 설형문자(楔形文字, B.C 3,000년경)보다
        800년이나 앞서는 세계 최초의 문자였던 것이다.

        영어의 알파벳은
        이집트의 상형문자에서 그 뿌리를 찾고 있는데
        BC 1200 년경의 페니키아에서 표음문자로 사용된 알파벳으로 발전하였다가,,,
        그리스가 번창할 때 ( BC 800년 ~ BC 30년경 ) 그리스식 알파벳으로 변형되었다가,,,
        로마가 전 유럽을 지배할 때인
        BC 753년(건국) ~ BC 275년(이탈리아 통일) ~ AD 476 년(서 로마 멸망) ~ AD 1453년(동 로마 멸망) 의 시기에 
        라틴 알파벳으로 발전하여 대부분의 유럽의 나라에서 알파벳을 사용하게 되었다.


      창힐 문자

        녹도문자(鹿圖文字)는 주로 우리나라에서만 사용되다가
        배달국 14세 치우천황(B.C 2,707년 즉위)시절에 중국 산동반도 출신의 창힐이라는 사람이
        배달국의 자부 선생으로부터 녹도문자를 배워갔고, 녹도문자를 계승 발전시켜 창힐문자를 창안했다.
        그리고 중국에 창힐문자를 널리 보급시켰다. 이로써 중국에서 최초로 문자가 생기게 된 것이다.


      골각(骨刻) 문자

        중국의 산동성 주변에서 발굴한 문자가 새겨져 있는 수백개의 동물( 소, 사슴, 코끼리 )의 뼈 조각들을 연구한
        중국 산둥(山東)대 고고미술학연구소 류펑쥔(劉鳳君) 소장이 2008년 10월에 발표한 내용을 보면
        중국의 산둥성 창러(昌樂)현 지역에서는 BC 2,500 ~ BC 2,000 년경에 이미 문자를 사용했다고 발표했다.


<< 중국의 산둥성 창러(昌樂)현 지역에서 발굴된 골각( 骨刻 ) 문자 >>

        그리고 이 문자를 발굴한 지역의 이름을 따서 창러 골각( 昌樂 骨刻 ) 문자라고 이름을 붙였다.

        뼈에 새겨진 글자들은 세로로 잘 정열된 글자들이었으며
        점(占)을 치는데 사용했었던 갑골문자(甲骨文字)와는 달리 전(占)을 친 흔적이 없었다고 한다.
        함께 출토된 유물도 있었는데 뼈로 만든 칼과 송곳은 전형적인 신석기 시대의 유물들이었다.

         당시 이 발표에 참석했던 중국 고고학자들은
        당시 산둥 지역은 동이(東夷)족들이 집단으로 거주했기 때문에
        이 골각문자는 동이족 (東夷族)의 문자로 봐야 한다고 주장했는데,
        중국 산둥(山東)대 고고미술학연구소 류펑쥔(劉鳳君) 소장은
        << 문자의 모양도 고대 상형문자인 동이족 (東夷族) 문자 계열에 속한다 >> 고 지적하면서
        << 안양(安陽)을 중심으로 한 은허 지역에서 발견됐던 갑골문자도 동이족의 골각문자가 발전한 형태일 가능성이 크다 >>라고 말했다.

        이렇게 중국의 최고 학자들도 자신들의 한자(漢字), 갑골문자(甲骨文字) 가
        동이족(東夷族)의 문자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한국(韓國)에서는 한자(漢字)를 한국인들의 조상이 만들었다고 주장하지 않고 있다.


      갑골문자(甲骨文字)

        갑골문자(甲骨文字)는
        당시 중국 산동성에 살았던 동이족(東夷族)족들이 사용하였던 창힐문자를 발전시켜
        은(殷)나라 시대 ( BC 1600 ~ BC 1046 ) 에 이르러서 갑골문자(甲骨文字)로 발전했는데,
        갑골문자는 은(殷)나라의 수도였던 은허(殷墟 ; 허난성 안양현)에서 1899년 처음으로 발견된 후
        주변지역을 발굴하면서 수많은 갑골문자들이 발견되었다.

        이 갑골문자(甲骨文字)를 중국에서는 중국 최초의 문자로 인정하고 있는실정이다.
        갑골문자(甲骨文字)는 다시 한자(漢字)로 발전했던 것이다.

                             

                  << 중국 산동성에서 발견된 창힐문자가 그려진 비석 >>         << 중국에서 발견된 갑골문자 >>

        중국 사람인 사마천이 저술한 <사기(史記)>에 보면
        은(殷)나라는<동이족>의 국가라고 하고, 은(殷)나라를 건국한 <설>이라는 임금도 <동이족>이라고
        분명히 기록하고 있다.

        중국의 은(殷)왕조는 동이족이 통치하였던 국가였으며 단군조선의 제후국이었던 것이 분명하다.
        은(殷)나라가 동이족의 국가인데 거기서 나온 문자인 갑골문자(甲骨文字)도
        중국의 것이 아니고 동이족(우리나라 민족)의 문자인 것이다.


      한자(漢字)

        중국이 체계화된 한자(漢字)를 사용하기 시작한 때는
        진시황 (秦始皇)의 진(秦)나라 ( BC 221 ~ BC 206 년 ) 때부터 이며
        한(漢)나라때 ( BC 202 ~ AD 220 년 ) 문자의 체계적인 정비와 함께 문자를 통일하여 사용하였으며
        그래서 중국의 문자를 한(漢)나라의 문자(字)라는 뜻으로 한자(漢字) 라고 부르는 것이다.


      가림토(加臨土) 문자

        배달국의 녹도문자(鹿圖文字)는 고조선 시대에는 가림토 문자로 계승 발전되었고
        다시 조선 시대의 세종대왕에 의해 훈민정음(한글)으로 발전 계승되었던 것이다.

        가림토(加臨土) 문자는
        지금으로부터 4200년여전인 BC 2181년경의 고조선 시대때
        제3세 단군이었던 가륵단군이 을보륵(乙普勒)에게 명하여 정음 38자를 짓게 했다는 기록이
        1363년 (고려 공민왕 시절 ) 이암(李巖)이라는 사람이 저술한 단군세기란 역사책에 나온다.

        어떤 학자들은 영어의 알파벳이 지금으로부터 3000년전에 만들어지기 시작했는데
        가림토(加臨土) 문자 38자 중에는 X, M, P, H 및 I, O 등 영어의 알파벳과 유사한 글자가 있는 것을 보고
        한국의
        가림토(加臨土) 문자가 영어에도 영향을 주었다고도 말한다.

        또 가림토(加臨土) 문자는 중국의 갑골문자, 한자(漢字) 에도 영향을 주었고,
        일본의 초기 신대문자, 몽고의 파스파 문자, 인도의 구자라트 문자, 터키어, 티벳어 만주 퉁구스어 등이
        단군시대의 가림토
        (加臨土) 문자의 영향을 받은 것이 확실하다.

        일본의 고대 문자 = 신대문자(神代文字)

          고조선의 가림토(加臨土) 문자는 일본(日本)으로 건너가서 신대문자(神代文字)가 되는데
          일본의 수많은 신사(神社)에는 가림토(加臨土) 문자와 아주 비슷한
          신대문자(神代文字)가 새겨진 명문(銘文)과 비석(碑石)들이 많이 남아 있다.
          일본 역사책( 일본서기 )에서 일본역사의 초창기를 신대(神代)라고 부르는데,
          신대(神代)시대에 일본으로 전파된 문자이기 때문에 일본에서는 신대문자(神代文字) 문자 라고 부른다.

          일본에서는 말은 있었지만 자신들의 글이 없어서 한자(漢字)의 소리나는 음을 그대로 빌려서 사용하다가
          초기 일본의 글이라 할 수 있는 만요(萬葉) 가나의 형태로 나타난다.
          현재까지 밝혀진 가장 오래된 만요가나는 5세기경의 이나리야마 고분에서 출토된 철검명에 적힌 인명표기이다.
          이러한 만요가나는 나중에 히라가나와 가타가나로 발전해 나간다.

          헤이안 시대 (8세기~12세기) 에는 사실상 만요(萬葉) 가나로 모든 일본어의 음절을 표기하게 되었는데,
          문자의 사용이 광범위해지면서, 사실상 오늘날과 거의 유사한 히라가나가 사용되기 시작하였다.
          또 나중에는 가타가나 글짜도 사용되게 되었다.


        인도 문자

          고조선 시대때에 이미 인도 (印度)와 교류가 있었는데
          가림토 문자가 인도로 건너간 것은 BC 2000 년 ( 또는 BC 2100 년 ) 경이라고 보여진다.
          옛날 기록을 보면 우임금 시대 때, 고조선의 제후였던 순임금의 부친 유호(有戶, 고수)씨는
          월식생성(인도/印度)의 땅으로 들어가 인도(印度) 사람들을 가르쳤다는 기록이 있다.

          인도(印度)의 남부 구자라트 주에서 쓰이는 문자는 우리의 한글과 너무나 흡사한데
          자음은 상당수가 같고, 모음은 10자가 꼭 같다. 말도 같은 말이 많을 정도이다.
          이 지역은 배달국 (또는 고조선) 시대 우리 민족이 인도로 이동해서 세운 것으로 추정되는데,
          인더스 문명의 주인공 드라비다족의 후예가 사는 지역이다.


        중국의 산동성, 만주 일대, 요하강 일대, 그리고 한반도에서
        이 가림토 문자가 적혀있는 비석들이 발견되는데
        경북 경산시 와촌면 강학리 명마산(鳴馬山) 중턱에 자리한 바위 (가로 1.8m,세로 3.4m)에서
        가림토로 추정되는 문자 다수가 새겨진 것이 발견되었다.

        중국 산동성 환태시에서 발굴된 가림토 문자를 연도를 측정해본 결과 BC 1850 년경의 것으로 판명되었다.
         


<< 가림토 문자 38자의 모습 >>

        가림토(加臨土)문자는 세종(世宗)대왕이 1443년에 제정한 훈민정음의 표음부호와 거의 비슷하다.
        가림토 정음(正音)의 기본부호 38 글자였는데,, 세종대왕이 제정한 훈민정음은 28 글자이다.
        즉 가림토(加臨土)문자에서 10글자를 빼고 만든 것이 훈민정음이었던 것이다.

        이 가림토 문자는 한자(漢字)의 뜻을 전하고자 만들어진 표음(表音)글자로써도 사용되었다.

        중국의 배운 학자들은 사석에서
        한자(漢字)는 중국사람들이 만든 것이 아니고,,, 한국 사람 ( 동이족/東夷族 )이 만든 것이라고 말한다.
        또 삼황오제 ( 三皇五帝 ) 도 중국 사람이 아니고,,, 한국 사람 ( 동이족/東夷族 )이라고 말한다.
        그런말을 들은 한국사람들은 가만히 있지 않고 꼭 한마디를 하는데,,,
        한자(漢字)는 중국사람들이 만든 것이라고 말하고,,,,, 삼황오제 ( 三皇五帝 )도 중국 사람이라고 말한다.

        무현스럽게,,,, ㅂ ㅅ 같이,,,,
        하지만 걱정하지 말자, 모든 것은 순리대로 되기 마련이니까,,,,,
        언젠가는 그렇게 판명될 것이니까,,,,

        지금 우리가 우기면서 싸워봐야 힘든 싸움이 될 것이지만
        시간이 지나고,,,분위기가 무르익으면,,, 저절로 해결 될 것이니까,,,,,
        그때까지 << 아리랑 >> 의 노래를 잊지 말고 부르고 있으면 만사가 해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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