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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기도 강화에 있는 고인돌 >>

        세계 고인돌의 50% 이상이 우리나라에 있다.,,,, 한반도는 고인돌의 왕국이다.

          고인돌은 세계 곳곳에서 볼 수 있다.
          영국, 프랑스 등의 유럽과 지중해연안에서도 있고, 인도, 인도네시아 등의 동남아지역에서도 볼 수 있다.
          그리고 동북아시아에서는 중국의 요녕성 지역과 일본의 큐슈 지방에 일부 나타나고,
          우리나라에서는 전국적으로 수많은 고인돌들이 널려있다.

          지구상에는 약 10만개의 고인돌이 있다.
          한반도 이외지역에서는 약 3만개가 있는데,,,
          한반도에서는 약 7만개 ( 남한 5만개 / 북한 2만개 ) 의 고인돌이 있다.

          그런데 우리들은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지만
          한반도에 고인돌이 집중적으로 많다는 것이 놀라운 현상인 것이다.
          한반도에는 약 7 만개의 고인돌이 있는데, 이 숫자는 전세계 고인돌의 과반수 이상에 해당하는 숫자이다.
          왜 고인돌(Dolmen)이 한반도에 유난히 많이 남아있는 것일까 ???  

          이 문제를 풀면 우리나라의 고대역사가 저절로 풀린다.

          고인돌을 영어로는 Dolmen 또는 Table Stone 이라고 한다.


        고인돌은 부족장의 무덤이었다.

          일반적으로 고인돌은 청동기시대 마을의 부족장의 무덤이라고 알려져 있다.
          하지만 꼭 무덤의 역할만 한 것이 아니고 마을의 행사(제사/기우제)를 했을 것이라고 추정하기도 한다.

          우리나라의 제천 황석리에서 고인돌을 발굴해 보니까
          3000년전에 죽었던 사람의 유골이 나왔다고 한다. 그러니 고인돌은 고대인의 무덤이었던 것이다.

          전라도 (고창군) 지방에 가면 한마을에 고인돌이 수백개가 넘을 정도로 많은데,,,,
          그러면 이것이 모두 부족장의 무덤이었을까 ???

          고인돌을 발굴해 보면 주변에서
          돌로 만든 칼,, 돌로 만든 화살촉 등의 신석기시대 유물도 나오고,,,
          토기등과 함께 청동기 시대 유물도 나오는데,,,
          사람의 유골이나 뼈들이 출토 되기도 하며,,,,,
          유물이 전혀 없는 경우도 있다.


<< 고인돌 주변에서 출토된 유물들,,, >>

왼쪽의 큰 것 3개가 고조선 시대 ( BC 2333년에서 BC 238 년까지 ) 유물의 상징인 비파형 동검이다.

        어떻게 만들었을까 ?

          작은 받침돌을 아래에 놓고 위에 큰 덮개돌을 얻어 둔 형태인데
          위에 있는 큰 돌의 무게가 수십톤에서 백톤이 넘는 것도 있는데
          이런 돌들은 어디에서 구했으며,,, 어떻게 운반했으며,,,, 어떻게 그 위에 올려 놓았을까 ?

          엄청난 인력을 동원하여 고인돌을 만들었다는 이야기 인가 ???

          인력으로 1톤의 돌을 1.6 km 옮기는데 최소한 20명 정도의 인력이 필요하다고 한다.
          전남 진도에서 고인돌의 운반과정을 재현한 적이 있었는데
          6.8톤의 바위돌을 옮기는데 필요한 인원은 73명이 었다고 한다.

          덮개돌을 운반하고,,, 땅을 파고 무덤방을 만들고,,, 덮개돌의 운반로를 만드는 사람,,,,
          덮개돌 밑에 통나무를 고이는 사람,,,, 음식물을 제공하는 사람,,,,, 등등,,,
          청동기 시대에 고인돌을 만들기 위해서는 약 1,000 명에 가까운 인원이 동원되어야 했고,,,
          죽은 사람에 대한 장례 의식 행사였지만, 또한 부족의 거족적 행사이기도 했을 것이다.
          고인(故人)의 혈연집단 뿐만 아니라, 이웃 혈연이나, 이웃 부족 집단의 인력까지 동원해야 했을 것이다.

          청동기 시대에 이런 고인돌을 만들기 위해서는
          이렇게 대규모의 노동력을 동원 할 수 있는 사회적 협력 체계가 이룩되어 있었고,,,
          또  강력한 지배력을 갖춘 체계의 사회였을 것이고,,,,,
          석기시대와는 상대도 안될만큼 생산성이 향상된 청동기 도구를 사용하여
          개인 또는 집단의 부(富)를 축적할 수 있었던 사회였을 것이다.


        한국의 고인돌 유적지에서 발견된 유럽인들의 유골

          충북(忠北) 제원군(提原郡) 청풍면(淸風面) 황석리(黃石里)

            충주댐이 건설되면서 수몰지역에 위치한 이곳에 있었던 고인돌을 1962년에 발굴하였는데
            이곳에서 BC 430 년 경에 매장된 백인계통의 유골이 발견되었다.


          강원도 정선군 북면 여량 2리 아우라지 고인돌 유적지

            2005년 10월 이곳을 발굴조사 하였는데
            이곳에서 발견된 유물과 유적은 BC 970 년경의 것이었으며,
            이곳에서 나온 인골을 DNA 조사하였더니 서양인(영국인)과 비슷한 유전자를 가진 사람으로 판명되었다.


          강원도의 원주지역과 충청도의 충주지역의 고인돌 유적지에서 백인계통의 유골이 나왔다면
          백인계통의 사람들이 3000년전에 이곳(남한강 주변)에서 주인 노릇을 하면서 지배계층으로 살았다는 증거인데,,,
          이들은 어디에서 왔는 것일까 ?
          우리말과 고대 인도인들이 사용했던 드라비다 언어와 유사한 것이 너무 많은 것,,,,,
          또 고인돌이 벼농사를 짓는 지역에서만 있는 것을 유추해석하여
          이들이 인도쪽에서 온 사람일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그러면 한국 사람들의 뿌리는
          원래부터 한반도에 살고 있었던 원주민,,,,
          벼농사 기술을 가지고 인도쪽에서 온 아리아 민족이 원주민과 동화되고 혼혈이 되었었고,,,,,
          이후 시베리아쪽에서 북방계의 유목민족이 한반도로 대거 이주하면서 또다시 혼혈이 되어,,,,,
          지금의 한국인을 만들었다고 봐야 한다.
          물론 숫자적으로 가장 많은 북방계가 한국인의 주류임에는 틀림이 없다.


        한반도 북부 ( 북한 지역 )에서 발굴된 고인돌

          평안남도 성천군 백원리 9호 고인돌 무덤에서
          세형동검과 팽이토기 그리고 사람의 뼈도 함께 발굴되었는데,
          이 고인돌의 축조 연도는 BC 1400 년경인 것으로 밝혀 졌다.

          평안남도 덕천시 남양 유적지는 BC 3800 년경의 청동기 유적지로 판명되었다.

          평양시 부근 상원군 장리 1호 고인돌 무덤에서
          수많은 청동 제품의 유물과 함께 활촉 70여 개, 군사 지휘봉인 별 도끼 3개가 나왔는데
          국왕급으로 추정되는 이 고인돌 무덤의 제작 연도는 BC 3000 년 경이라고 한다.

          평양시 상원군 룡곡리 4호, 5호 고분에서는 비파형 장끝과 청동단추와 함께 사람의 유골도 발견되었는데
          BC 2600 연대에 제작된 고인돌로 판명되었다.

          한반도 북부 지역에서 BC 3000 년경의 청동기 유물이 발견됨으로써
          BC 2333 년에 건국된 고조선이 화려한 청동기 문화를 가지고 있었음을 증명하였다.

          평안남도 증산군 용덕리 10호 고인돌 무덤의 두껑돌 겉면에 80여 개의 구멍이 새겨져 있었는데
          조사결과 이 구멍은 별자리임이 확인되었다.
          돌의 중심부에는 북극성이 그려져 있으며 80여 개의 구멍은 11개의 별자리에 있는 80여 개의 별을 나타내고 있었다.이 고인돌은 BC 3000 년경에 제작된 것으로 판명되고 있다.

          평양시 상원군 번동 2호 고인돌 무덤에도 별자리로 보이는 80여 개의 홈구멍이 새겨져 있다.
          이 고인돌 무덤의 제작 연도는 BC 3000 년 경이라고 한다.

          즉 고조선 시대 ( BC 2333 년 ~ BC 238년 )이전부터 우리의 선조들은 별을 세밀하게 관측했음을 말해주는 것이다.


        고인돌과 한민족의 칠성사상

          고인돌 유적을 꼼꼼히 살펴보면 고인돌에 깊숙한 홈을 파둔 것 같은 것이 있는데,
          이것을 연결해보면 대부분 북두칠성 (北斗七星)의 별자리와 일치하는 것을 알수 있다.

          또 우리나라 전국 방방곡곡에 칠성바위라는 큰 바위들이 많이 있고,,,,
          절(寺)에 가보면 큰 건물인 대웅전 뒤편에 조그마하게 칠성각 (또는 칠성전)이라는 건물이 있고,,,
          우리의 옛 할머니들은 장독대 위에 정안수를 떠 놓고 << 칠성님 >>께 소원을 빌어 왔다.
          우리 조상들은 인간의 길흉화복은 물론 수명까지 북두칠성(北斗七星)의 칠성님이 주관하고 있다고 믿었다.
          그래서 우리 민족은 예로부터 <<칠성신앙>>이라는 매우 특이한 신앙을 가지고 있었다.

          한반도에 남아있는 고인돌의 제작년대가 BC 3000 년에서 BC 200 년 사이인데
          이것은 고조선 시대( BC 2333 년 ~ BC 238년 ) 의 연도와 일치한다.

          고인돌의 뚜껑돌 위에 북두칠성이 새겨져 있었다는 것은
          우리민족은 이미 BC 3000 년 이전부터 별자리을 관측하고 특히 북두칠성 (北斗七星)을 신성시했다는 증거이다.

          이후 고구려시대 왕릉에서 나온 벽화에도 북두칠성의 형상이 다량으로 발견되고,
          신라, 백제, 가야는 물론이고,,,
          고려시대 고분에도 북두칠성이 빠지지 않고 나오고 있고,,,
          조선시대에도 북두칠성 (北斗七星)의 그림들이 상당히 많이 나온다.

          이것은 우리민족이 하늘의 자손,,, 북두칠성의 자손,,, 이라고 생각했으며,
          북두칠성은 우리 한민족의 열렬한 신앙의 대상이었음을 나타내고 있는 증거들이다.

          장례식에 사용하는 관속에 북두칠성을 그려놓는다든지,,
          고인돌에 북두칠성을 그려 놓는다 든지 하는 것은
          죽은 영혼이 고향의 별인 북두칠성으로 돌아가라는 염원을 담고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 역사상 북두칠성의 기운을 타고난 것으로 전해지는 인물로는
          김유신(등에 칠성무늬),
          강감찬 장군(문곡성),
          정몽주(어깨 위 칠성모양의 검은 점 7개),
          안중근(가슴에 흑점 7개, 그래서 칠성이 응했다 하여 '응칠'이라고 불렀다) 등이 있다.

          일제시대때 미신이라면서 못하게 하였고,,,,
          기독교가 들어 오면서 자신들이 모시는 신(神)이 아닌 또다른 신(神)을 모신다고 못하게 하였고,,,
          그래서 요즘은 그 이름만 남은 민족신앙이지만
          그래도 생활속에서 그 자취는 많이 발견되고 있는 것이다.


        시대 구분

          석기 시대 ( Stone Age )

            구석기시대 ( Old Stone Age / Paleolithic ) :
            중기 석기시대 ( Middle Stone Age / Mesolithic / Epipalaeolithic ) :
            신석기 시대 ( New Stone Age / Neolithic ) : BC 7000 년부터 시작

            구석기시대 ( Old Stone Age )

            구석기 시대 사람들은 동굴이나 바위 그늘 또는 강가에 움막집을 지어 작은 군집 생활을 했다.
            그들은 대개 사냥과 식물채집에 의존한 것으로 여겨지며,
            효율적인 사냥을 하기 위해 집단 생활을 하고 있었다.

            한반도에 구석기 시대 유적이 발굴된 것은  
            경기 연천군 전곡읍 전곡리(全谷里) 유적,,,,,,, 약 30 만 년 전의 유적
            충북 청원군 강외면 만수리 유적,,,,,,,,,,,,,,,,,,,,약 54만∼56만 년 전의 유적 ( 2005년 발굴 ) 
            함경북도 선봉군 굴포리(屈浦里),
            평양직할시 상원군 검은모루,
            충청남도 공주시 석장리(石壯里)
            이들 유적지의 연도를 측정하면 보통 30~50 만년전의 유적지 이다.

            중국에서는 베이징() 근교에서 발견된 베이징 원인()의 유골,,,,, 30만∼60만 년 전의 유물

            1981년 충북 단양 상시리에서 연세대 박물관 팀이 6~10만년전 사람의 유골을 발견하였다.
            유물이 출토된 곳은 동굴이라기 보다는 바위가 조금 나와 있는 곳의 하단부로써
            구석기부터 신석기, 청동기 시대 까지의 모든 유물이 발견되었던 곳이었다.
            발견된 사람의 뼈는, 주걱뼈와 앞팔뼈, 뒤팔뼈 등으로
            이빨만 발굴됐던 북한의 <<덕천인>>에 비해 더 많은 뼈가 발굴됐다.

            2003년 6월부터 2004년 6월까지 전남 장흥군 신북 유적지(4만여평)를 발굴 조사했는데,
            이곳에서 타제석기(쪼개서 만든 석기) 3만점과, 마제석기(갈아서 만든 석기) 20여점이 발굴되었다.
            이 유물들의 방사성탄소연대 측정 결과 1만 8,500년 전∼2만 5,500년 전에 만들어진 것으로 확인되었다.

            돌을 갈아서 도구를 만든 시기는 구석기 시대로써
            이란, 이라크 등의 중동지역에서 BC 9,000 년경의 마제석기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것으로 알려져 왔었는데
            한반도에서는 BC 20,000 년경에 벌써 마제 석기를 사용하였던 것이다.

            일본에서는 후지무라 신이치(藤村新一) 라는 역사학자가
            1981년부터 2000년까지 20여년에 걸쳐 일본의 구석기 시대의 유물을 발굴했는데,
            4만여년 전의 석기를 발굴하였고, 7만년전의 석기를 발굴하였고,
            그가 발굴하는 곳에서 항상 구석기 유물이 출토되었다.
            그러나 그가 발굴한 모든 것은 날조된 것으로 밝혀져 일본의 역사학회가 국제적으로 대망신을 당했다.

            신석기 시대 ( New Stone Age )

            1만여 년 전에 지구의 빙하기가 끝나고 날씨가 따뜻해지면서 자연환경이 바뀌는데,
            구석기시대에 살았던 맘모스, 쌍코뿔이, 물소 등의 큰 짐승이 사라지고,, 대신 작은 짐승들이 나타났다.
            이런 작은 짐승(동물)들을 잡기 위해 돌을 갈아서 뾰족하게 만든 화살촉 같은 것을 사용하게 되는데
            이런 시기를 신석기 시대라고 말한다.

            한반도에서의 신석기 시대는 약 1만년전 ~ 8,000년 전부터 시작되었는데,
            이 당시 생활을 볼수 있는 중요한 유물로는 토기 ( 빗살 무늬 토기 )를 만들어 사용했다.
            신석기시대 마지막 단계에서는 초기 농경 단계로 들어간 곳도 있었다.

            한반도에서 신석기 시대의 유적지가 발견된 곳은
            대부분 한강유역, 서해안 지역, 두만강 유역, 낙동강 유역, 대동강 유역 등에 150개가 넘는 유적지가 있다.
            강원도 양양군 손양면 오산리 유적 ,,,, 8,000 년전 유적 ,,,토기, 석기등 300 점의 유물 발굴
            서울 암사동 유적
            경북 울진군 후포면 후포리 유적,,,, 사람의 뼈가 40개 이상 발견되었음,,,, 돌도끼가 많이 출토 되었음.

            제주도 고산리 신석기 유적지에서는 BC 10,000 년경에 만들어진 돌을 갈아서 만든 유물들이 발굴되었다.

            신석기 시대 대표적인 토기 -- 빗살무늬토기

              나무의 열매를 식량으로 사용하면서 이런 식량을 저장하기 위해서 흙으로 만든 그릇이다.
              흙으로 모양을 만들고 700도 정도의 열(火)을 가해 단단하게 만든 것이다.

              토기는 주로 저장용과 조리용으로 이용되었는데,
              신석기 시대의 정착생활 및 농경생활과 밀접한 관련을 가진다.

              토기의 표면이 빗살모양의 무늬가 있다고 빗살무늬토기라고 하는데
              한반도 전역(150 여곳에서 발굴)에서 많이 발견되는 대표적인 토기이다.

              한반도에서 발굴된 빗살무늬토기는 제작 년대는 초기의 것은 BC 6,000 년경부터 인데,
              주로 많이 만들어진 시기는 BC 4,500년 부터 BC 3,500년 까지 이며,
              BC 2,000 년경까지도 만들어 사용되었다.

              이 토기는 일본, 중국의 북쪽지역(만주 지역)과 몽고지역, 러시아의 연해주 지역, 시베리아 지역,
              중동지역 그리고 북 유럽지역에서도 발견되었다.
              그러나 중국의 남쪽 지역에서는 이 빗살무늬토기가 발견되지 않고 있다.

              어떤 학자들은 이 토기가 북쪽의 몽고 지역과 만주지역에서 한반도로 전파된 것이라고 주장하지만
              한반도의 남쪽인 낙동강 유역( 경상남도, 경상북도)에서 집중적으로 많이 출토되고 있고
              특히 이곳에서 출토되는 토기가 다른지역의 것보다 훨씬 이전에 제작된 것으로 판명됨에 따라
              이 토기의 제작 기술이 한반도에서 북쪽으로 전파되었다고 주장하는 학자도 많다.

              시베리아지역에서 출토되는 빗살무늬토기는 주로 BC 3,000 ~ BC 2,000년 경에 제작된 것인데
              한반도에서 출토된 빗살무늬토기는 주로 BC 4,000 ~ BC 3,000년 경에 제작된 것으로
              북쪽지역(시베리아지역)보다 1,000년정도 앞서서 제작되었다.


          청동기 시대 ( Bronze Age ) : BC 3500 년 ~ BC 1100 년

            청동기 시대라고 청동기 제품만 사용한 것이 아니고,
            주로 돌을 갈아서 사용하던 신석기 시대의 도구를 그대로 사용하면서
            중요한 도구 또는 무기류를 청동기 제품으로 사용했던 시기이다.

            이 당시에 토기를 만들어 사용했는데 주로 무문토기 (無文土器)를 만들어 사용했다.
            이 시기부터 수렵생활을 하다가 농사를 짓는 농경사회로 발전해 나간다.

            그리스(Greece)에서의 청동기시대는 BC 3000 년 경 부터라고 말한다.
            중국에서의 청동기 시대의 유물이 출토 된 것은 BC 1500 ( 또는 BC 1600 년 ) 경 부터이다.
            우리민족이 살았던 요하(遼河)강 유역에서는 BC 2500 년경에 이미 고급의 청동기 유물이 나왔다.

            우리민족이 살았던 만주 지역 -- 요하(遼河)강 유역에서는 BC 2500 년경에 청동기시대가 시작되었고,
            발해 연안의 청동기 문화는 BC 2000 년 경에 청동기시대가 시작되었고
            한반도 남부에서는 BC 2000 년경부터 청동기시대가 시작되었다.
            만리 장성 남쪽의 중국은 BC 1500 년경부터 청동기시대가 시작되었다.

            우리민족이 만든 청동제품과 중국이 만든 청동제품은 제품의 질에서도 상당한 차이가 난다.
            고조선의 중심지인 요하(遼河)강 유역에서 발견된 비파형 단검과 청동 활촉을 분석해 보면
            비파형 단검의 경우 청동이 72.43%, 아연이 6.84%, 주석이 13.52% 였고,
            청동 활촉의 경우 청동이 66.39%, 아연이 11.62%, 주석이 9.93% 였다.
            이것은 용도에 따라 청동, 아연, 주석의 함량을 달리하여 질 좋은 제품을 만들어 냈다.

            그러나 중국에서 출토되는 청동기 유물에서는 아연이 포함되어 있지 않다.
            실제로 중국에서는 송나라 ( AD 960 년 ~ AD 1279 년 ) 이전의 청동기 제품에서는
            아연을 포함하고 있지 않다고 한다.

            고조선 시대의 청동 유물은 매우 정교하며 그 기술이 아주 발달되어 있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청동기시대 유물인 고조선 동검 -- 요녕식 동검 -- 비파형 동검에 대해서 살펴보면
            이 동검은 주로 BC 1500 년 ~  BC 300 년경에 만든 것인데,
            만주 지역인 요하(遼河)강 유역과 요동반도, 발해만 지역과 한반도에서 출토되고 있다.
            그런데 만리장성 이남의 중국본토에서는 발견되어지지 않는다.

            고조선 동검과 함께 발견되는 청동기 시대의 유물을 보면,
            화살촉, 거울(銅鏡), 낚시 고리, 도끼, 종, 동물형상의 혁대고리, 단추, 마구류(馬具類), 등인데,
            고조선 동검이 발견되는 지역에서 함께 출되되어지고 있다.

            한반도에 청동기시대의 유적지는 3만개의 고인돌을 위시하여 수도 없이 많다.
            경북 김천시 구성면 송죽리 유적,,,, 집터발굴,,, 토기 출토,,,
            경북 안동 지례동 유적,,,,, 고인돌,,, 돌검, 돌화살촉, 반달모양 돌칼 등이 출토되었다.
            대구 달서구 상인동 유적,,,, 고인돌
            대평 유적 (大坪 遺蹟, 진주 옥방 유적)
            사천시 이금동 유적 (泗川市 梨琴洞 遺蹟)
            전남 화순군 대곡리 ,,,, BC 300 년경의 청동기 유물


<< 1971년 전남 화순군 대곡리 마을에서 출토된 청동기 시대 유물 >>

집 주변을 정리하다가 돌무지 속에서 나왔는데 주인은 엿장수에게 팔아 넘겼고
엿장수가 이상하게 생각하여 신고 했는데
청동기 시대의 유물로 판명되어 국보 제143호로 지정되었다.

          철기 시대 ( Iron Age ) : BC 1200 년 ( 또는 BC 1000 년 ) 경 부터

            청동기 제품보다 단단한 철(鐵)이 생산되면서 철과 청동기가 같이 사용되었던 시기이다.

            한반도 주변에서 철기 시대의 유적이 발견된 것을 보면

              (1) 이북 평양의 강동군 송석리의 무덤에서 쇠(강철)로 만든 거울이 출토 되었는데,
              제작 년도가 BC 1100 ( 고조선 시대 ) 경 이었다.

              또 평양 강동군 항목리에서는 쇠(강철)로 만든 칼이 출토 되었는데,
              제작 년도가 BC 700 ( 고조선 시대 ) 경 이었다.

              (2) 한국과 러시아의 국경지대인 연해주 ( 러시아의 바라바시 마을 )에서
              BC 700 ~ BC 500 경의 철기 제품 가공 작업장이 발굴되었다.
              이곳에서 쇠로 만든 도끼와 쇠로 만든 화살촉을 비롯해서 많은 철재 유물들이 발굴되었다.

              러시아의 고고학자들은 연해주지역 철기시대의 기원을 BC 900 년 으로 보고있다.
              이 지역의 철기 문화는 중앙아시아에서 유입된 것으로 본다.

              (3) 중국의 요하(遼河)강 유역에서는
              고조선 후기인 BC 800 년경부터 철(鐵)을 사용한 유물들이 출토되고 있다.

              (4) 강원도 홍천군 두촌면 철정리에 있는 청동기 시대 유적지(주거지)에서
              송곳과 같은 형태의 단조품의 철기 유물이 나왔는데,
              제작 연도를 탄소 년대 측정방법으로 알아본 결과 BC 640 년에 제작된 것이라고 했다.

              (5) 중국에서 철(鐵)을 사용한 흔적이 출토되는 시기는
              춘추전국시대( BC 722 년 ~ BC 221 년 )때인데
              철기 문화가 발달된 고조선과 인접한 지역이었던 연(燕)나라 지역에서 철을 만들었다.

              당시 만든 유물들을 보면 주로 BC 500 년 ( 또는 BC 350 년 ) 경에 제작된 것이 많다.


            세계 각국의 철기 문화

              그리스(Greece) 에서는 BC 1300 (또는 BC 1200 )부터 철(鐵)을 사용하였다.
              유럽에서의 철기 시대는 동쪽(고조선/또는 그리스)으로부터 기술이 전래되어 시작되었는데

              이탈리아 ( Italy ) 에서는 BC 300 년
              영국에서는 BC 500 년
              중부 유럽에서는 BC 500 년 경부터 철기 시대가 시작되었다.

              인도(India) 에서는 BC 1200 년 경부터 시작되었는데
              BC 300 년 (또는 AD 200 년 ) 부터는 좋은 질의 철(鐵)을 생산하였다.


            한반도에서의 철기 문화

              한반도에서의 철기 문화는
              1988년부터 경남 창원시 다호리(茶戶里)에 있는 고대 유적지를 발굴하였는데
              쇠칼, 낫, 쇠도끼등의 농기구, 세형동검등 BC 200 년경에 사용되어진 수많은 철제 제품들이 나왔고,,,
              붓도 출토 되었는데 이 시기 한반도에서는 문자를 사용하는 문명이 존재했음을 입증하고 있다.

              또 창원 다호리(茶戶里)의 고대 유적지에서 중국의 화폐가 출토되었는데
              중국에서 동전 화폐를 만들기 시작한 시기는 진시황의 진(秦)나라 ( BC 221 ~ BC 206 년 ) 때 부터이며,
              한(漢)나라 ( BC 202 년 ~ AD 220 년 ) 의 무제(武帝)때인 BC 119년 에 오수전(五銖錢)이라는
              화폐를 만들었다는 기록이 있다.---- 사기(史記)

              이러한 유적지의 출토물을 보면
              당시 한반도 남부지방은 중국의 한(漢)나라 그리고 낙랑(樂浪)과의 교섭이 활발하였음 알수 있고,
              청동기 시대를 이끌었던 고조선(古朝鮮)이 멸망하면서,
              한반도 남부지역의 청동기 시대 국가였던 마한(馬韓), 진한(辰韓), 변한(弁韓)도 멸망하고,
              철기 시대 국가인 백제(百濟), 신라(新羅), 가야(伽倻) 로 넘어 가게 되는 초기 상황을 짐작할수 있다.

              역사책 ( 중국인이 쓴,, 삼국지 위지 동이전 )에서도
              변한, 진한에서 철(鐵)을 생산하여, 낙랑, 변한, 일본으로 수출하였다고 적혀있다.--- BC 200 년경

              한반도에서 또다른 철기 시대 유물은
              1997년 전남 광주 ( 광산구 신창동 ) 에서 발굴된 유물인데,
              BC 100 년경에 철로 만든 마차의 부속품의 유물이 나왔다. -------- BC 100 년경

              2009년 충남 아산시 탕정면 용두리와 명암리 일대에서
              삼성전자의 하청업체 공장을 건설하다가 3세기 경에 만들어진 고분 78개가 발견되었다.
              이 고분에서 쇠로 만든 긴 칼인 철검(鐵劍)이 다량 발굴되었다.
              또 화살촉이나 창, 도끼, 낫과 같은 다른 철제 무기나 철제 농기구와 함께 출토됐다. ----- AD 300 년경

              AD 100 부터 AD 400 년까지 한국에서 발견된 쇠로 만든 철제 칼은 대부분 길이가 짧은 단검이었는데
              이곳에서 발견된 철검(鐵劍)은 길이가 긴 철검(鐵劍)이었다.


                << 충남 아산시 탕정면 용두리와 명암리 일대에서 발견된 철기시대 유물 >>


            한국과 중국의 철기 문화 비교

              그런데 청동기 문화에서 앞섰던 한국계 사람들이 중국으로 넘어가서 중국의 지배계층이 되는데,
              이들이 만든 철(鐵)의 제조 기술이 BC 400 년경부터 한국보다 앞서게 된다.

              당시 중국에서 철(鐵)의 제조 기술을 크게 발전 시킨 나라는
              주(周) 나라의 제후국으로 출발한 연(燕)나라
              ( BC 1100 년 ~ BC 221 년 )라고 볼수 있다.
              연(燕)나라 는 고조선과 가장 가까운 지역으로 중국의 북부지방을 차지하고 있었다.

              연(燕)나라 유적지에서 발굴된 철(鐵)의 제조 유적지에서 발굴된 유물들을 보면
              당시 가장 강성했던 진(秦) 나라보다도 오히려 훨씬 더 많은 철제품들을 생산했었고,
              중국 최초라고 하는 철갑옷도 이곳 연(燕)나라 유적지에서 발굴되었다.

              이렇게 철(鐵)의 제조 기술에서 앞선 중국은
              BC 300 년경에 중국의 연(燕)나라가 고조선 지역을 침략하였으며,

              BC 220 년경
              진시황(秦始皇) 이라는 사람이 나타나서 중국을 통일하고 진(秦)나라를 건설하였고,
              BC 200 년경에는 중국 한(漢)나라가 중국을 통일하고 고조선 지역을 침략하였다.


        고인돌은 언제 만들어 졌는가 ???

          주로 지금부터 3000 ~ 4000 년전인 청동기 시대에 만든 것으로 추정된다.

          한국에서 고인돌의 유적을 발굴하여 고인돌을 만든 연대를 측정해보니
          경기 양평 양수리 유적 B. C 1950년,
          충남 대전 비래동 유적 B. C 1145년 ∼ B. C 900년,
          전남 여수 화장동 유적 B. C 910년 ∼ B. C 740년,
          전남 화순 대신리 유적 B. C 720년 ∼ B. C 390년,
          경기 파주 옥석리 유적 B. C 900년 ∼ B. C 740년,
          충북 제천 황식리 유적 B. C 930 ∼ A. D 10년 등이 있다.

          즉 한국의 고인돌은 BC 3000 년 경부터 BC 200 년 경 까지에 만들어 진 것임을 알수 있다.
          시대적으로 보면 고조선 ( BC 2333년에서 BC 238 년까지 )시대에 해당하는 시기이고,,,
          BC 3000 년경 청동기가 시작하면서 고인돌은 만들어 지기 시작하였고,,,
          BC 200 년경 양질의 철(鐵)을 생산하면서 고인돌은 더 이상 만들어지지 않았다.

          BC 6000 년 경부터 돌을 갈아 도구를 만들고 농경사회를 이룬 신석기 시대의 시작으로 보고
          BC 3000 년 경부터 청동기를 사용하여 청동검과 같은 무기를 만들고,,, 칼도 만들고,, 농기구도 만들어,,,
          사용하던 시기를 청동기 시대라고 하는데 이 청동기 시대부터 농업의 생산력이 향상되고,
          사유 재산이 축적되고 지배 계급이 발생하면서 부족 국가를 형성하기 시작한다.

          즉 한국에서 고인돌이 만들어진 신석기 말기와 청동기 시대 초기는 상당히 중요한 시기에 해당한다.
          비록 청동이지만 돌이나 나무로 만든 도구( 무기 / 농기구 / 생활용품 )를 쇠의 일종인 청동으로 만들어,
          생산성을 획기적으로 높이면서,,,, 사유 재산을 모으고,,,, 또 다른 지방을 침략하고,,,,,
          지배 계급이 형성되고,,,,,, 이러한 급격한 변화가 시작 되는 시기에 고인돌을 만들었던 것이다.

          즉 이 고인돌은 만들수 있었던 주인은
          그 지방에서 엄청난 부를 축적하고 있는 막강한 권력가라는 것을 알수 있다.

          고인돌이 마지막으로 나타나는 시기는 BC 200 년 경이다
          이 이후로부터는 고인돌 대신에 초기 철기 시대의 대표적인 무덤형태인 토광묘 ( 土壙墓 )가 나타난다.

          그러면 왜 이 시기에 지금까지 만들어 오든 고인돌을 더 이상 만들지 않았을까 ???

          죽은 조상을 매장하는 장례문화는 가장 보수적이고 전통성을 중시하기 때문에 함부로 바꾸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당시에 고인돌이라는 장례문화를 버리고 토광묘 ( 土壙墓 )로 변해 갔을까 ???

          본인이 생각하는 이유는
          청동기에서 양질의 철(鐵)을 생산하여 사용하는 철기 시대 ( BC 200 년 전후 ) 로 넘어 가면서,,,,
          청동으로 만든 것보다 훨씬 더 강력한 철제로 만든 도구들이 사용되면서,,,,
          청동기 시대의 소규모 부족을 다스리던 부족장에서,,,,
          철기 시대의 대규모 국가의 개념으로 넘어가면서 강력한 지도자가 등장하여,,,,
          국가의 왕에 해당하는 지도자는 고인돌 보다 큰 왕의 무덤 ( 돌무지,, 적석총 )을 만들고,,,,
          그렇지 않는 사람들은 토광묘 ( 土壙墓 )를 만들었다고 생각된다.

          즉 고인돌은
          신석기 시대의 마지막에서 청동기로 넘어 가면서 엄청난 사회적인 변혁기를 맞이 하면서
          고인돌이 만들어 지기 시작하고
          또 다시 철기 시대를 맞이 하면서 또 다른 사회적 변혁기에 고인돌은 더 이상 만들어지지 않게 되었다.


        동북공정의 허구 --- 유적과 유물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옛날에 중국사람들은 황하(黃河)강 지역과 양쯔강 (長江) 지역에 살았고,
          우리의 조상인 고조선 사람들은
          요하(遼河)강 유역에 살았다.

          중국은 황하(黃河)강 지역의 양사오(仰韶)문화의 유적이 BC 4500 년대의 것이고,
          양쯔강 (장강/長江) 유역의 허무두(河姆渡)문화의 유적은 BC 5000 년대의 것인데,
          이것이 세계에서 최고로 오래된 구석기 시대의 유적이라고 자랑했다.

          그런데 최근(2007년) 요하(遼河)강 유역에서 BC 7500 년대의 구석기시대의 유적과 유물들이 발굴된 것이다.

          중국의 입장에서는 골치가 아프기 시작한 것이다.
          동이족(東夷族) 즉 우리나라의 조상들이 중국의 조상들보다 먼저 우수한 문화를 가진 것이 밝혀졌으니
          보통 골치거리가 아닌 것이다,,,,

          그래서 나온 것이 동북공정이라는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중국이 이북(North Korea)을 먹기 위해서 하는 수작이라고 하지만
          사실은 더 골치 아픈 사건이 터져서 이를 막아 볼려고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는 것이 동북공정인 것이다.

          구석기 시대 유물만 있는 것이 아니고 청동기 시대 유물도 또 있다.

          청동기 시대 유물들인데
          중국은 황하(黃河)강 유역의 BC 1600 년대의 청동기 문화를 입에 침이 마르도록 세계 최고라고 자랑했다.
          그런데 최근(2007년)에 요하(遼河)강 주변에서 발굴된 청동기 시대 유물이 BC 2000 년대의 것으로 판명되어,
          세계 최고가 황하(黃河)가 아닌 요하(遼河)가 차지하게 되었으니,
          자기 것도 아닌 요하(遼河)를 자기 것이라고 주장할려니 골치아픈 것이고
          그래서 동북공정이라는 엄청난 거짓말을 하는 것이다.

          그 당시 그곳에 있었던 고조선도 중국이라고 하고,,,,
          그 당시 그곳에 살았던 사람도 중국 사람이라고 우기는 것이다.

          이런 사실을 비웃고 말없이 증명해주는 유물이 바로
          중국의 만리장성이고,,,, 한국의 고인돌이고,,,고조선의 비파형 동검이고,,,,
          요하(遼河)강 지역의 신석기 시대와 청동기 시대의 고조선의 유물인 것이다.

          이러한 유물들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그리고 이러한 유물들의 발굴은 중국사람들이 한 결과였다.

          동북공정 ???
          우끼는 소리하지 말라고 하는 고조선 조상님들의 비웃음소리가 들린다.

          또하나..
          이 고인돌은 한반도에 집중적으로 분포하고 있고,,,일본의 규슈지방에도 있는데,,,
          왜 정작 중국에는 없는가 ???
          유적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고 했다.
          고인돌이 분포하는 곳은 한국사람들의 영역이었고,,,고인돌이 없는 장소는 중국의 영역이었던 것이다.

          중국 놈들,,, 고인돌도 너희들 것이라고 우겨야지,,,,
          일본 놈들,,,,고인돌도 너희들이 처음 만든 것을 한반도에 사는 사람들이 배워서 따라 했다고 우겨야지,,,
          역사는 있는 그대로를 인정해야 한다 ,,,, 유물(유적)이 어떻게 거짓말을 한단 말인가.


        고인돌과 관련된 당시의 시대상황

          한국의 고인돌은 BC 3000 년 경부터 BC 200 년 경 까지에 만들어 졌다.

          BC 3000 년경 청동기 시대가 시작하면서 고인돌은 만들어 지기 시작하였고,,,
          BC 200 년경 양질의 철(鐵)을 생산하면서 고인돌은 더 이상 만들어지지 않았다.

          시대적으로 보면 고조선 ( BC 2333 년 ~ BC 108 년 )시대에 고인돌을 만들었고,
          고조선이 멸망하면서 고인돌은 더 이상 만들지 않았다.

          고조선의 멸망은
          BC 300 년경 연(燕)나라가 고조선의 중심부인 요하(遼河)강 유역을 쳐들어 왔을 때 큰 타격을 입고,
          BC 108 년 한(漢)나라의 침입으로 고조선(古朝鮮) -- 위만조선(衛滿朝鮮)은 멸망하였다.

          고조선의 멸망과 함께 한반도에서는
          청동기 시대 국가였던 마한(馬韓), 진한(辰韓), 변한(弁韓)이 멸망하고,
          철기 시대 국가인 백제(百濟), 신라(新羅), 가야(伽倻) 로 넘어 가게 되었다.

          고조선(古朝鮮 : BC 2333 년 ~ BC 108년 )

            BC 2333년 고조선(古朝鮮)이 건국되었다.
            당시 중국은 삼황오제중에서 요(堯)임금이 다스리던 시대이었다.
            삼황 오제의 마지막 시대인 요(堯), 순(舜), 우(禹) 임금 시절을 거치고,,,,
            우(禹) 임금부터 시작된 세습왕조를 하(夏) 나라라고 하는데 BC 2070 년부터 하(夏)나라가 시작되었다.

            기자조선 (箕子 朝鮮 : BC 1291 년 ~ BC 194 년 ) -- 은(殷)나라 출신의 기자(箕子)가 세운 나라.

            BC 300년경 연(燕)나라는 진개(秦開)를 앞세워 고조선을 침략해왔다.
            500년간을 춘추 전국시대(春秋戰國時代)를 보내면서 전쟁을 하는 기술을 익힌 중국은
            말과 마차를 연결한 전차(戰車)를 이용하고,,, 말을 타는 기마술(騎馬術)을 익혀서,,
            고조선의 중심부인 요하(遼河)강 지역까지 침략해 들어 갔었다.
            큰 타격을 입은 고조선은 동쪽으로 근거지를 옮겨 한반도 북부지역으로 이동하였다.

            위만조선 ( 衛滿朝鮮  : BC 194 년 ~ BC 108 년 ) --- 연(燕)나라 출신인 위만(衛滿)이 세운 나라

            BC 108년 중국 한(漢)나라의 침입으로 고조선(古朝鮮) 의 마지막 집단인 위만조선(衛滿朝鮮)이 멸망함.
            그후 한(漢)나라는 고조선의 옛 땅에 자신들의 행정구역인 한사군(漢四郡)을  설치하였다


          당시 중국의 상황

            삼황 오제 ( 三皇 五帝 : BC 3528 년 ~ BC 2070 년 ) 시대
            하 (夏)왕조 ( BC 2070 년 ~ BC 1766 년 )
            은 (殷)왕조 ( BC 1766 년 ~ BC 1027 년 ) / 상(商) 왕조
            주(周) 왕조 ( BC 1122 ∼ BC 256 )

            BC 771년 유목민족인 흉노(훈)족이 주(周)나라로 쳐들어와 주(周)나라는 동쪽으로 도망하였다.

            연(燕)나라 ( BC 1100 년 ~ BC 222 년 ) --- 춘추 전국시대(春秋戰國時代)
            춘추 시대 (春秋時代 : BC 722 년 ~ BC 481 년) --- 춘추오패(春秋五覇)
            전국 시대 (戰國時代 : BC 403 년 ~ BC 221 년)  --- 전국 칠웅(戰國 七雄)

            중국의 진(秦)나라 ( BC 221 ~ BC 206 년 ) --- 진시황 (秦始皇)에 의한 중국 통일
            BC 222년 진(秦)나라가 연(燕)나라를 멸망시키고 BC 221 년 중국을 통일했다.
            한(漢)나라 ( BC 202 년 ~ AD 220 년 )


          당시 한반도의 상황

            마한 (馬韓)

              마한 (馬韓)에는 모두 54개 부족 국가가 있었는데
              54개 부족 국가중에서 강성한 부족 국가는 백제국(伯濟國)과 목지국(目支國)이었다고 한다.

              BC 194년경에 중국 북쪽지역의 연(燕)나라 사람인 위만(衛滿)이 기자조선 (箕子朝鮮)을 공격할때
              기자조선 (箕子朝鮮)의 41대 왕(王)인 준왕은 위만(衛滿)을 피하여 바닷길로 달아나,
              한반도의 남부 지역에서 목지국((目支國)을 건설하였다고도 한다.

              마한(馬韓)은
              BC 18년경에 온조왕(溫祚王)이 한강 하류의 하남위례성에서 건국한 백제(百濟)에 합병된다.


            진한 (辰韓)

              진한 (辰韓)에는 모두 12개 부족 국가가 있었는데
              BC 57 년에 가장 강력한 사로국(斯盧國)이 주변을 합병하였다.

              진한 (辰韓)의 마지막 왕은 <태기왕> 이었는데,
              삼량진(경남:낙동강 중류) 전투에서 지고 신라의 박혁거세에게 쫓겨서
              강원도 횡성군 태기산(덕고산)으로 숨어 들어가서 남은 군사들을 훈련시키면서 재기를 노렸으나,
              신라군에게 들켜 서라벌군(軍)의 박혁거세에게 정복당해 멸망한다.


            변한(弁韓)

              변한(弁韓)에는 모두 12개 부족 국가가 있었는데
              이들 12개 나라중에서 구야국(狗邪國)이 주변을 합병하여 결국 가야(伽倻 또는 加耶)로 발전하였다.

              변한(卞韓)은 BC 39년 서라벌군(軍)의 박혁거세에게 항복하면서 멸망하였다.


            연도별

              BC 194년경에 중국 북쪽지역의 연(燕)나라 사람인 위만(衛滿)이 기자조선 (箕子朝鮮)을 공격할때
              기자조선 (箕子朝鮮)의 41대 왕(王)인 준왕은 위만(衛滿)을 피하여 바닷길로 달아나,
              한반도의 남부 지역에서 목지국((目支國)을 건설하였다고도 한다.

              이때 함께 이동한 집단중에서 일부는
              경상도 지방으로 이주하여 원래 이곳에 살던 주민들이 세운 한(韓)을 누르고 20여개의 소국을 세웠다.
              또 일부는 일본의 대마도, 구주 등에 이주하여 수십개의 소국(小國)을 세우게 되었다.

              B.C 57년에 진한(辰韓) 지역으로 이주해 온 박혁거세 무리는 선주민을 누르고
              사로국(斯盧國)을 세웠다.

              A.D 42년에 변한(弁韓) 지역으로 이주해 온 김수로왕의 무리들은 선주민을 누르고 6 가야를 세웠다.

              A.D 396년에 고구려가 백제를 토벌하자 경상도 지방의 가야국은 고구려의 세력권으로 들어 갔으나,
              고구려의 세력이 약해지자 다시 백제의 세력권으로 들어갔다.

              신라는 가야를 차례로 합병하여 나가는데,
              A.D 514년에 아라가야를,
              A.D 532년에 금관가야를,
              A.D 562년에 고령가야를  병합하므로서 가야국들은 모두 신라에 병합되었다.


        본인의 견해

          세계의 고인돌중에서 절반정도의 숫자의 고인돌이 한반도에 집중적으로 분포하고 있다...
          이 고인돌은 쉽게 만들수 있는 것이 아니고 엄청난 인력이 동원되어 만들수 있는 것이다.
          또 이것을 만든 시기가 3000~5000 년전이다.

          간단하지 않는가
          3000년 ~ 5000 년전의 한반도에서는 세계 최고의 문명 사회였던 것이다.
          세계문명의 시작이 우리나라 한반도였던 것이다.

          BC 6000 년 경부터 시작되어 오던 신석기 시대가
          BC 3000 년경부터 청동이라는 재료를 이용하던 청동기 시대로 넘어 가는데
          이때 엄청난 사회적 변화를 맞이하는데,,,, 한반도에서 특히 많은,,, 강력한 변화를 맞이 했다.
          즉 소규모 지방 마다 지배층이 발생하고,,,, 생산성이 획기적으로 향상되었다.

          돌로 도구를 만들어 사용하던 때에는 지방마다 그 제품의 질(質)에 대한 차이가 별로 없었다.
          하지만 청동으로 도구를 만들어 사용하니까 돌을 갈아서 도구를 만들어 사용할 때보다
          훨씬 생산성이 향상되었다.
          요즘과 비교하면 컴퓨터가 없던 시대에서 컴퓨터를 만든 것 보다 더 큰 변화를 가져온 것이다

          돌로 만든 칼을 들고 싸우는 사람에게 청동으로 만든 칼을 들고 싸우면 이기게 되어 있었고,,
          돌로 만든 농기구로 농사를 짓는 것보다 청동으로 만든 괭이로 농사를 짓는 것이 훨씬 소출이 많았을 것이고,,
          돌로 만든 화살촉으로 사냥을 하는 것보다는
          청동으로 만든 화살 촉으로 사냥을 하는 것이 훨씬 사냥하기 쉬웠을 것이다.

          이렇게 석기시대에서 청동기 시대로 넘어 가면서 한반도에서는 엄청난 변화를 겪게 되는데
          이때 자연적으로 발생한 것이 고인돌이었던 것이다.
          힘이 생기고,,,, 사유 재산이 생기니까,,,, 힘을 과시하고 싶은 욕망에,,,, 고인돌을 만들었던 것이다.

          그 당시 한반도 전역에 걸쳐서 고인돌이 있었다는 것은 한반도 전체가 청동기를 제작하였다는 증거이고
          조그마한 산골 고을에도 고인돌이 있다는 것은
          청동기를 제작할 수 있는 실력이 특수한 계층의 사람들만 사용한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쉽게 청동기를 제작할 수 있었다는 증거이다.

          이렇게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가장 화려한 청동기 시대를 2000년간 보낸 것이다.
          이 시기를 시대적으로 보면 고조선 시대 ( BC 2333년 ~ BC 238 년 )에 해당하는 시기이다.

          그런데 철기 시대가 오면서 또 다른 큰 변화를 당하는데
          소규모 집단에서 대규모 집단의 강력한 지도자가 나타나면서 한반도는 또 한번 엄청난 변화를 겪었던 것이다.

          청동기를 잘 다루던 사람들이 철기를 잘 다룬다는 것은 상식이다.
          청동에 비해 강력하고 더욱 단단한 철(鐵)이 발견되면서 철(鐵)로 만든 도구들이 만들어 지게 되는데
          이 또한 한반도에서 가장 먼저 시작되었다.

          철(鐵)로 된 무기나 농기구 들이 만들어 지면서,,,,
          기존의 소규모 집단에서 좀더 큰 규모의 집단으로 형태를 바뀌어 가게 되고,,,,,,
          강력한 지배자가 등장하였던 것이다.

          그 증거가 BC 3000 년부터 BC 200년 사이에 작은 고을마다,,, 우리나라 전국적으로 만들어 오든 고인돌이
          BC 200년을 전후해서 부터는 더 이상 만들어지지 않게 되었다는 것이다.

          즉 한반도를 중심으로 한 지역에서 청동기 문화가 시작되었고,,,,
          한반도를 중심으로 한 지역에서 철기 문화가 시작한 것이다.
          그 증거가 고인돌인 것이다.

          신석기에서 청동기로 넘어 가면서 엄청난 변화를 겪었고,,,,,,
          또 청동기에서 철기로 넘어가면서 또 다른 엄청난 변화를 겪었던 흔적이 있는데,,,,,,,,,,
          이런 흔적은 한반도에서 가장 강력하게 발전하고 전개 되었다는 흔적이다.

          옛날에 <<주몽>> 이라는 드라마를 본 적이 있었는데,,,
          철제 무기를 한(漢)나라의 기술을 배워서 만들었다는 대목이 나온다.
          이것은 역사적으로 보면 사실이다.

          청동기 문화에서 앞섰던 한국계 사람들이 중국으로 넘어가서 중국의 지배계층이 되는데,
          이들이 만든 철(鐵)의 제조 기술이 BC 400 년경부터 한국보다 앞서게 된다.

          당시 중국에서 철(鐵)의 제조 기술을 크게 발전 시킨 나라는
          주(周) 나라의 제후국으로 출발한 연(燕)나라
          ( BC 1100 년 ~ BC 221 년 )라고 볼수 있다.
          연(燕)나라 는 고조선과 가장 가까운 지역으로 중국의 북부지방을 차지하고 있었다.

          연(燕)나라 유적지에서 발굴된 철(鐵)의 제조 유적지에서 발굴된 유물들을 보면
          당시 가장 강성했던 진(秦) 나라보다도 오히려 훨씬 더 많은 철제품들을 생산했었고,
          중국 최초라고 하는 철갑옷도 이곳 연(燕)나라 유적지에서 발굴되었다.

          이렇게 철(鐵)의 제조 기술에서 앞선 중국은
          BC 400 년경에 중국의 연(燕)나라가 고조선 지역을 침략하였으며,

          BC 300 년경에도 중국의 연(燕)나라가 고조선의 중심부인 요하(遼河)강 지역을 침략하였다.

          BC 220 년경
          진시황(秦始皇) 이라는 사람이 나타나서 연(燕)나라를 멸망시키고 중국을 통일하였다.
          BC 200 년경에는 중국 한(漢)나라가 중국을 통일하였다.
          BC 108 년 한(漢)나라가 고조선을 침략하여 멸망 시킨다.

          그후 중국으로부터 철(鐵)의 제조 기술을 배워 실력을 쌓은 고구려는
          AD 37년 고구려가 후한(後漢)의 지배에 있던 낙랑을 공격하여 점령하기 시작하여,

          AD 300 년경부터 중국의 실력을 능가하는 철(鐵)의 제조 기술을 익혀 중국을 쳐들어 간다.
          385년 고구려는 후연(後燕)을 공격하여 요동(遼東)지역을 장악했고,
          402년 고구려는 다시 후연(後燕)을 공격하여 요동(遼東)지역과 요령성 조양시(遼寧省朝陽市) 지역을 장악했다.

          고인돌을 만들었던  BC 3000 년 경부터 BC 200 년 경 까지의 청동기 시대는 한국이 중국을 훨씬 앞섰고
          한국계 사람들이 중국으로 넘어가서 중국의 지배계층이 되면서
          이들이 만든 철(鐵)의 제조 기술이 BC 400 년경부터 한국보다 앞서게 되었고,
          중국의 발달된 철(鐵)의 제조 기술을 배운 한국은 다시 중국과 대등한 세력으로 성장하게 되었던 것이다.

          이것이 고인돌이 우리에게 말해주는 것이다.
          고인돌과 같은 말없는 유적들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영국에서의 고인돌 -- Stonehenge

          영국에 있는 스톤힌지 ( Stonehenge )는 UNESCO 문화제로 지정되었고 세계 7대 불가사이라고 떠든다.

          영국에 있는 스톤힌지 ( Stonehenge )는
          BC 3000 년부터 BC 2500 년 경에 건설되어진 것으로
          이 지역에 살았던 지배 계층 ( 청동기를 처음으로 만들어 사용하였던 계층 ) 의 무덤이었다.

          1950년대 영국의 역사 학자들이 이 지역을 발굴, 조사해 본 결과를 보면
          이곳 주변에서 유골 240 개를 발굴해 내었고,
          발굴된 뼈 조각들을 방사성 탄소 측정을 한 결과,
          스톤힌지 주변에 묻힌 유골은 BC 3000 년부터 BC 2500 년 경에 뭍힌 것으로 밝혀졌다.

          그러면 비슷한 시기에 비슷한 규모로 건설된 한국의 고인돌은 7만개나 되는데,,,,,
          왜 이것은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는단 말인가 ????

          영국에 있는 1개의 군락으로 되어 있는 고인돌은 세계적인 유물이고,,,,
          한국에 있는 7만개의 고인돌은 뭐란 말인가 ???

          청동기 시대 영국의 국력은 이렇게 1개 군락의 고인돌을 만들수 있는 국력이었다면,
          청동기 시대 한국에서는 7만개의 고인돌을 만들수 있었던 국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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