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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에 살고 있는 한국 사람들 ( 만주 지역의 조선족 )

        중국을 지배했던 백제의 22 담로국,,, 그리고 중국에 완전히 동화 되어 버린 백제의 후손들,,,

          백제 22담로는 백제가 한반도 이외지역에 있는 백제의 해외 식민지를 효과적으로 통치하기 위해
          왕족을 담로국의 왕으로 임명하여 다스리게 하였던 제도 이었다.

          중국 양나라(梁:501~557)의 역사서인 양서(梁書)의 기록을 보면 아주 상세히 기록 되어져 있다.

          여기서 잠깐 중국의 역사를 보면
          삼국지(三國志)에 나오는 위(魏), 촉(蜀), 오(吳)나라가 전쟁을 하여 조조의 위(魏)나라가 삼국을 통일하였다.
          265년 위(魏)나라의 중신이었던 사마염(司馬炎)에 의해서 장안(長安)을 수도로 하여 진(晉)나라가 건국되었으나,
          지방마다 강력한 세력들이 각축을 벌이고 있었다.

          304년 흉노족의 유연(劉淵)이 진(晉)나라로부터 독립하여 조(趙)나라를 건설하면서
          중국은 수많은 나라들로 나뉘어져 서로 싸우는 5호 16국 시대 ( 304년 ~ 439년 )로 접어 들었고,
          439년 북위(北魏)에 의해 중국의 화북지역이 통일될 때까지 중국은 전쟁속에서 살았다.

          이때 중국은
          남쪽에서는 남조(南朝)인 송(宋)나라와 북쪽에서는 북조(北朝)인 북위(北魏)가 남게 되어 평온 할것 같았는데,
          강남(江南)지방의 남조(南朝)는 다시 송(宋), 제(齊), 양(梁), 진(陳)의 4개 왕조가 차례로 생겼다가 망했으며,
          화북(華北)지방의 북조(北朝)는 북위(北魏), 동위(東魏), 서위(西魏), 북제(北齊), 북주(北周)의 5개 왕조가
          생겼다가 망하는 또 다른 전쟁속에서 지내게 된다.

          이때부터 수(隋)나라가 중국을 다시 통일할 때 까지를 남북조 시대 (南北朝時代 : 439 년 ~ 589년 )라고 한다.

          중국의 남북조 시대 (南北朝時代 : 439 년 ~ 589년 ) 강남(江南)지방에 있었던
          송(宋)나라의 송서, 제(齊)나라의 남제서, 양( 梁  : 501~557 )나라의 양서(梁書) 등등의 역사서를 살펴보면
          << 백제에는 22개의 담로가 있었다. >>,
          << 백제 대왕(천황)이 왕족이나 신하를 담로왕으로 봉해 백제 22담로를 다스리게 했다 >> 라고 적혀있다.

          송서(宋書)를 보면
          << 호(胡)가 동진(東晉)을 공격하여 양쯔강 하구 ( 지금의 상해 지역 ) 의 기름진 옥토를 빼앗았다 >>
          라는 기록이 있다.
          여기서 말하는 호(胡)는 백제를 말하고 있다.

          백제의 고이왕(古爾王 - 재위 : 234년 ~ 286년)은
          246년 위(魏)나라의 관구검이 고구려를 침공하자, 그 틈을 노려 요서지역 ( 지금의 요령성 )을 차지했고,
          백제의 분서왕(汾西王 - 재위 : 298년 ~ 304년)은
          304년 낙랑군(樂浪郡)의 서쪽 ( 지금의 천진 ) 지역을 공격하여 이를 점령하였다.
          백제의 근초고왕(近肖古王 - 재위 : 346년 ~ 375년)은
          일본을 평정하고 또 중국의 모든 해안지역을 평정하여 차지하였다.

          당시 백제가 일본 일대를 차지했다는 증거는 일본의 국보인 칠지도(七支刀) 이다
          칠지도(七支刀)에는 << 백제 대왕이 왜 후왕(담로왕)에게 하사한다 >> 는 글이 쓰여져 있다.
          즉 백제가 왜에 식민지를 설치하여 왜 후왕 정확히는 담로왕에게 칠지도를 하사했다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칠지도에 새겨진 글을 해석한 결과 칠지도의 제작년도를 369년, 372년, 408년 등으로 추정하고 있다.

          중국의 역사서인 자치통감에는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다.
          << 부여는 원래 송화강 유역에 있었는데, 346년 백제의 침략을 받아 서쪽으로 연(燕)나라 근처로 옮겼다 >>

          346년은 백제의 근초고왕(近肖古王 - 재위 : 346년 ~ 375년)이 즉위한 해이다.
          근초고왕(近肖古王)이 즉위하면서 백제는 주변의 국가들을 침략하여 정벌하기 시작하였는데,,
          369년 고구려의 고국원왕(故國原王 -- 재위 : 331년 ~ 371년)이 군사 2만 명을 이끌고
          치양성(황해도 배천)에 쳐들어 오면서 벌어진 전투에서 백제는 고구려를 물리치고 병사 5천여 명을 사로 잡았다.
          371년에는 태자와 함께 고구려군을 대동강에서 물리치고 옛 대방의 대부분을 점령하였고,,,
          평양성을 공격하여 고구려의 고국원왕(故國原王 -- 재위 : 331년 ~ 371년)을 전사시켰다.

          중국의 역사서인 남제서(南齊書)와 자치통감에서는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다.
          488년과 490년에 백제(百濟)가 북위(北魏)와 전쟁을 벌여 크게 승리했다는 기록이 있다.

          당시 고구려는 최대 전성기의 장수왕(長壽王 --  재위: 412년 ~ 491년 )이 통치하고 있던 시기로써
          475년에는 고구려가 백제(百濟)를 공격하여
          백제의 수도 위례성을 함락시키고 백제의 개로왕(蓋鹵王 -- 재위 : 455년~475년)을 죽이기도 하였다.

          488년 북위(北魏 ; 386 년 ~ 534 년)의 기병 10 만명이 백제(百濟)를 침공하였다.
          이때 백제의 동성왕(東城王 - 재위 : 479년 ~ 501년)은
          사법명, 찬수류, 해례곤, 목간나 등의 4명의 장군으로 하여금 위군을 습격하여 크게 격파했다.
          이때 백제(百濟)와 북위(北魏)가 전투를 벌였던 지역은 지금의 중국 산동(山東) 반도 지역이었다.

          당시 산동(山東) 반도지역은
          중국의 남북조 시대 (南北朝時代 : 439 년 ~ 589년 )시대의 제(齊)나라가 차지하고 있었던 지역이었는데,
          북위(北魏)가 제( 齊 -- 455년 ~ 501년 )나라를 침략하여 이 지역을 차지하였다가,,,
          이번 전투로 백제(百濟)의 영토가 되었다.

          전쟁후 백제의 동성왕(東城王 - 재위 : 479년 ~ 501년)은 이 지역을
          정로장군 매라왕 사법명, 안국장군 벽중왕 찬수류, 무위장군 불중후 해례곤, 광위장군 면중후 목간나를
          광양태수, 청하태수, 광릉태수, 성양태수로 봉해 담로왕 또는 담로후의 역활을 하면서 이지역을 다스리게 하였다.

          589년 수(隨)나라가 400년간 분열된 중국을 통일함으로써 백제의 22 담로국들은 힘이 약해졌으며
          660년 백제의 멸망과 함께 중국에 살고 있었던 백제 사람들도 모두 중국인으로 동화되어 버렸다.


        백제의 멸망으로 중국으로 끌려간 백제 사람들

          660년 7월 신라와 당(唐)나라는 백제를 멸망시켰다.
          660년 9월 당시 전쟁에서 이긴 당(唐)나라 장수 소정방(蘇定方)은
          백제의 의자왕(義慈王)을 비롯한 태자를 포함한 왕족, 대신, 장수급의 사람들 88명과
          백제의 백성 12,807 명을 당(唐)나라 수도였던 장안(長安 -- 지금의 서안(西安))으로 호송시켰다.

          백제의 의자왕(義慈王)은 당(唐)으로 압송된 후 4개월만에 당(唐)나라에서 죽었다.


        중국에 완전히 동화 되어 버린 신라의 후손들

          통일신라시대 당나라에 가서 살았던 많은 신라인들,


        만주 지역에 살고 있는 조선족 (朝鮮族)

          고구려 멸망이후 만주지역에는 우리 민족이 살고 있었다.
          고려 시대에는 생활의 어려움으로 많은 고려인들이 만주지역으로 이주 했었고,,,,
          조선 시대 후기에는 굶주림과 탐관오리들의 횡포를 피해서 많은 사람들이 만주로 이주 하였다.
          우리 민족은 만주지역에서 한반도로 들어 오기도 하고 또 한반도에서 만주지역으로 넘어 가기도 하였다.

          여기서 만주라고 하는 지역은
          지금 중국의 동북 3성 지역으로 << 요녕성, 길림성, 흑룡강성 >> 지역을 말한다.
          우리가 << 만주 봉천에서 개장사를 했다 >>는 말을 많이 들었던 심양(봉천)을 중심으로 한 요녕성,,,
          평안도와 함경도를 접하고 있는 연변, 목단강, 밀산지역의 길림성,,,
          안중근의사가 일본의 이토히로부미를 암살한 하얼빈을 중심으로 한 흑룡강성,,,

          그런데 일본 강점기 시대 ( 1910년 ~ 1945년 )에는
          독립운동을 하기 위해 한반도에서 만주쪽으로 많은 사람들이 넘어 갔으며,,,
          또 일본 제국의 강압으로 강제 이주를 당하여 만주쪽으로 넘어 갔으며,,,
          또 다른 일부 계층은 먹고 살기 위해 만주로 넘어갔던 것이다.

          이들이 지금까지 동북 3성(만주)에 살고 있는 숫자는 약 200 만명 정도이다.

          1945년 일본 패망 후 중국의 민족자치, 민족평등 정책에 따라
          조선족이 가장 많이 거주하고 있었던 길림성에서는
          연변에 조선족자치주가 건립되었고,,, 장백현에는 조선족 자치현이 건립되었다.
          길림성에는 가까운 함경도와 평안도를 고향으로 둔 사람들의 후손들이 많이 살고 있고,,,,
          흑룡강성에는 경상도와 전라도에서 일제에 의해 강제로 끌려간 사람들의 후손들이 많이 살고 있다.

          이들을 어떻게 볼것인가 ???

          한국 정부에서는 << 재외 동포로 인정을 하겠다 >>고 말하고 있고,,,,
          중국 정부에서는 << 중국 내에 있는 소수 민족 중의 하나인 조선족이다 >> 라고 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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