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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역사와 중국역사의 상관 관계

        (1) 당(唐)나라의 공격을 막아낸 신라(新羅),,,,, 그 덕택에 티베트가 망하지 않았다.


        (2) 만주의 요(遼)나라의 공격을 막아낸 고려(高麗),,, 그 덕택에 중국의 북송(北宋)은 망하지 않았다.

          907년 몽고 지역 남쪽의 만주 지역에서
          거란(契丹)족의 야율아보기(耶律阿保機)가 요(遼)나라( 907 년 ~ 1125 년 )를 건국하였다.

          926년 요(遼)나라는 만주 북쪽의 발해(渤海 : 698년 - 926년)를 멸망시켰다.

          960년 조광윤(趙匡胤)에 의해서 송(宋)나라가 건국되었다.
          979년 송(宋)나라는 주변의 오(吳)나라, 월(越)나라, 북한(北漢)을 멸망시시고 중국을 통일하였다.
          979년 송(宋)나라는 북쪽의 요(遼)나라를 치기 위하여 원정군을 보내지만 대패하였다.

          송(宋)나라의 공격을 막아낸 요(遼)나라는 남쪽의 송(宋 : 북송--北宋 : 960년 ~ 1127 년 )나라를 치고 싶었다.
          그런데 북쪽의 정안국 (定安國)과 동쪽의 고려(高麗)가 있어서 함부로 송(宋)나라를 공격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요(遼)나라는 먼저 북쪽의 정안국 (定安國)과 동쪽의 고려(高麗)를 공격하였다.

          986년 요(遼)나라는 발해(渤海)의 부흥운동으로 일어나서 50년간 지속된 정안국 (定安國)까지 멸망시켰다.

          요(遼)나라는 고려(高麗)의 북진 정책(北進 政策)과 친송정책(親宋政策)에 대한 불만으로
          993년 부터 1018년 까지 3 차례에 걸쳐 고려(高麗)를 침입하였지만 모두 실패하였다.

          993년 (고려 성종 12년) --- 요(遼)나라의 1차 침략

            요(遼)의 소손녕이 80만의 대군을 이끌고 침략해 오자 고려는 박양유·서희 등을 보내 이를 막았다.
            서희의 단판 외교로 압록강 동쪽의 강동 6주를 획득했다.
            이로써 고려(高麗)의 영토는 압록강까지 진출하였다.


          1010년 (고려 현종 1년) --- 요(遼)나라의 2차 침략

            요(遼)의 성종 임금이 직접 40만 대군을 거느리고 고려(高麗)를 침략해 왔으나 실패했다.


          1018년 (고려 현종 9년) --- 요(遼)나라의 3차 침략

            요(遼)나라의 소배압이 10만 대군을 이끌고 침략해 오자
            고려는 강감찬을 상원수, 강민첨을 부원수로 삼아 20만 대군으로 대비하였다.
            강감찬의 귀주 대첩 -- 침략군 10만명 대부분이 사살됨


          3차례에 걸쳐 고려(高麗)를 침입하였지만 고려의 완강한 저항에 고려(高麗)를 정복하지 못한 요(遼)나라는
          중국 남쪽의 송( 북송--北宋 : 960년 ~ 1127 년 )나라를 본격적으로 치지 못하게 되었다.

          고려(高麗)가 요(遼)나라의 공격을 막아 냄으로써 이득을 본 나라는 힘없는 중국의 송(宋)나라였다.
          만약 요(遼)나라가 고려(高麗)를 침략하지 않고 먼저 송(宋)나라를 쳤다면
          송(宋)나라는 멸망하였을 것이다.

          요(遼)나라가 고려(高麗)를 정복하기 위한 전쟁에서 실패한 후
          고려(高麗)에서는 북쪽의 여진족들을 공격하였다
          이에 자극을 받은 여진(女眞)족들은 북쪽의 만주쪽으로 달아나서 힘을 길렀다.
          1107년 고려(高麗)의 윤관 장군은 여진(女眞)족을 북방으로 쫓아 버리고, 일대에 9성을 쌓아 방어하였다.
          1115년 여진(女眞)족의 아구타(阿骨打)라는 사람이 금(金 : 1115년 ~ 1234년)나라를 건국하였다.


        (3) 신라(新羅) 김(金)씨의 후손에 의해 만주에서 금(金 : 1115년 ~ 1234년)나라가 생겨났다.

          935년 신라(新羅)가 멸망하고 난후 신라 왕족(김씨)중에서
          당시 고려국(高麗國)의 평산(황해도 平山)지방에 살고 있었던 김 함보(金 函普)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북만주 흑룡강(黑龍江) 유역에 여진족(女眞族)들이 살고 있는 완안부(完顔府)로 이주하였다.

          완안부(完顔府)에서 높은 학식과 지도력을 인정받아
          완안부(完顔府) 족장(族長)의 지도자로 선출된 김 함보(金 函普)는
          주변에 살고 있는 조선인(朝鮮人), 말갈인(靺鞨人), 여진인(女眞人)들을 통합하여
          강력한 부족 연맹체로 키워 나갔다.

          김 함보(金 函普)의 8대손이었던 김 아골타(金 阿骨打)는
          1113년 형(兄)이 죽게되자 완안부(完顔府) 족장(族長)의 자리를 인계받게 되었다.
          1114년 요(遼)나라의 지배를 거부하고, 요(遼)나라의 지배하에 있던 길림성(吉林省)을 공격하여 점령하였다.

          1115년 김 아골타(金 阿骨打)는 국호를 금(金)이라고 정하고 황제(皇帝)의 자리에 오른다.

          1120년 요(遼)나라의 수도인 상경(上京)을 점령하고,
          1121년 또 다시 요(遼)나라를 공격하여 남경(南京 : 지금의 북경)을 점령하여 자신들의 수도로 삼았다.
          1125년 금(金)나라는 요(遼)나라를 공격하여 요(遼)나라를 멸망시켰다.

          1127년에는 남쪽의 송(宋)나라를 공격하여 송(宋)나라를 강남으로 밀어냈다 --- 남송(南宋)

          1214년 몽고족이 세운 원(元)나라의 공격을 받고 수도를 뻬이징에서 카이펑(開封)으로 옮겼다.
          1234년 원(元)나라의 공격을 받아 왕(王)이 자살함으로써 금(金)나라는 건국 120년 만에 멸망하였다.


        (4) 고려(高麗)의 북진 정책 때문에 금(金)나라가 생겨나고,,,,  금(金)나라의 공격으로 북송(北宋)이 멸망하였다.

          993년, 1010년, 1018년 요(遼)나라가 고려(高麗)를 정복하기 위해 3차례에 걸쳐 공격하였으나 실패하였다.
          여세를 몰아 고려(高麗)에서는 북쪽의 여진족들을 공격하였다
          북쪽의 만주쪽으로 쫓겨난 여진(女眞)족들은 살아 남기위해 스스로 힘을 길렀다.

          1115년 여진(女眞)족의 아구타(阿骨打)라는 사람이 금(金 : 1115년 ~ 1234년)나라를 건국하였다.

          건국한지 얼마되지 않는 금(金)나라이지만, 강력한 국력을 가지고 있었다.
          같은 핏줄의 고려(高麗)와는 전쟁을 할 필요가 없다고 판단하였다.
          실제 금(金)나라는 한번도 고려(高麗)를 침략한 적이 없었다.
          금(金)나라는 남쪽지역에 있었던 요(遼)나라와 송(宋)나라를 마음놓고 공략하기 시작하였다.

          1125년 만주 지역 남쪽의 거란(契丹)족이 세운 요(遼)나라를 공격하여 요(遼)나라를 멸망시켰다.
          1127년에는 남쪽의 송(宋)나라를 공격하여 송(宋 -- 북송--北宋)이 멸망시켰다.
          송(宋)나라는 중국의 강남 지역으로 밀려나서 남송(南宋)으로 살아 남았다.

          북송(北宋)은
          907년 당(唐)나라가 멸망하고 시작된 오대십국 시대를 거쳐
          960년 조광윤(趙匡胤)에 의해서 송(宋)나라가 건국되었다.
          979년 송(宋)나라는 주변의 오나라, 월나라, 북한을 멸망시시고 중국을 통일하였다.
          979년 북쪽의 요(遼)나라를 치기 위하여 원정군을 보내지만 대패하였다.
          993년, 1010년, 1018년 고려(高麗)가 요(遼)나라와의 전쟁에서 이겨서
          요(遼)나라의 공격을 피하면서 고려(高麗) 때문에 살아 남았는데,
          100년이 지난 후인 1127년에는 결국 신라(新羅) 김(金)씨의 후손인 (金)나라의 공격으로 멸망하였다.

          만약 금(金)나라의 왕(王)이 신라(新羅) 김(金)씨의 후손이 아니었다면
          남쪽의 요(遼)나라와 송(宋)나라를 공격하기 위해서는
          한반도에 있었던 고려(高麗)와는 전쟁을 피할수는 없었을 것이다.


        (5) 몽골(원)의 공격을 막지 못한 고려(高麗),,,, 원(元)나라의 공격으로 금(金), 남송(南宋)이 멸망하였다

          1206년 테무진(징기스칸)이 몽골을 통일하고 왕국을 건설하였다.

          1231년(1차), 1232년(2차) 몽골군이 고려(高麗)로 침입해 왔다.

          1234년 몽골군이 남쪽의  금(金)나라를 공격하여 결국 금(金 : 1115년 ~ 1234년)나라를 멸망 시켰다.

          1235년( 3차 ), 1247년( 4차 ), 1253년( 5차 ), 1254년( 6차 )에 걸쳐 몽골군이 고려(高麗)로 침입해 왔다.

          1259년 고려(高麗)의 항복으로 몽골군은 한반도를 완전히 장악하였고 침략 전쟁은 끝이 났다.

          1279년 원(元)나라 군대는 남송(南宋 : 1127년 ~ 1279년)을 공격하여 멸망시켰다.

          원(元)나라는 금(金)나라를 치기 위하여
          먼저 고려를 침략하였다 --- 1231년(1차), 1232년(2차) --- 고려(高麗) 군대가 패하였다.
          고려(高麗)군대를 제압한 몽골의 원(元)나라는 중국 만주에 있었던 금(金)나라를 공격하여 멸망시켰다.-- 1234년

          원(元)나라는 남송(南宋)을 치기 위하여
          먼저 고려를 침략하였다 --- 1235년(3차), 1247년(4차), 1253년(5차), 1254년(6차) --- 고려(高麗) 군대가 패하였다.
          고려(高麗)군대를 제압한 몽골의 원(元)나라는 중국 남쪽에 있었던 남송(南宋)을 공격하여 멸망시켰다.--- 1279년

          남송(南宋)의 입장에서 보면
          1127년 결국 신라(新羅) 김(金)씨의 후손인 (金)나라의 공격으로 남쪽으로 도망하여 겨우 나라를 세웠는데,
          1234년 금(金)나라가 몽골의 원(元)나라에게 망하면서 북쪽을 보호해주는 방어막이 없어지게 되었다.
          1279년 결국 몽골의 원(元)나라의 공격을 받아 멸망하였다.

          이렇게 한반도가 중국 북부지역의 군대에게 패하면 중국의 남부지역은 망하게 되어 있는 것이다.


        (6) 조선을 건국한 이성계(李成桂)와 명(明 : 1368년 ~ 1644년)나라를 건국한 주원장(朱元璋)

          이성계(李成桂 : 1335 년 ~ 1408 년 )와 주원장(朱元璋 : 1328 년 ~ 1398 년 )은 7살 차이로 동시대 인물이었다.

          중국의 역사책에서도
          주원장(朱元璋)의 출생지를 정확하게 말하지 못하고 있다.
          주원장(朱元璋)은 걸식을 하며 돌아 다닐 정도로 매우 가난한 어린 시절을 보냈고,,,,
          어려서 절에서 생활하였다고 하며,,,,  
          중국에서 활동할 당시 주원장(朱元璋) 주변에는 유독 고려인(高麗人)이 많았고,
          주원장(朱元璋)의 부인도 고려인(高麗人) 이었다고 한다.

          주원장(朱元璋)의 출생지가 어디인지는 중국에서는 아직까지도 밝혀지지 않고 있다.
          대개 천자가 태어난 땅이 중국내의 어딘가라면 그 마을 사람들은 난리가 난다.
          천자가 출생한 곳이라 하여 자손대대로 자랑을 하기 마련인데
          중국내에서는 주원장의 출생지라고 말하는 곳이 없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주원장의 출생지가 전라남도 해남 마을로 전해 내려 오고 있다.

          경남 진해에 있는 천자봉(天子峯)에 얽힌 전설

            해군 기지가 있는 진해에 가면 천자봉(天子峯)이라는 산이 있다.
            이 산(山)에는 다음과 같은 전설이 있다.

            옛날 천자봉 연못의 이무기가 용이 못 되어 마을 사람을 못살게 굴었다.
            이에 염라대왕이 이무기에게 용 대신 천자(황제)가 되라고 권하여 이무기는 그렇게 하겠다고 했다.
            그래서 염라 대왕은 이무기가 천자봉 연못 아래에 있는 마을의 주(朱)씨 가문의 아기로 태어 나도록 해주었다.

            주(朱)씨 가문의 노부부의 아들로 태어난 주원장(朱元璋)은
            어려서부터 총명해 5살 때 고승을 따라 절에 들어가 문무를 익혔고
            15살이 되었을때 벌써 장군으로 성장하여 중국으로 건너가서 명(明)나라를 세웠다고 한다.

            또 다른 전설은 함경도 사람이었던 태조 이성계의 아버지가 천하 명당을 찾아 전국 방방곡곡을 헤메다가
            경상도 진해 천자봉(天子峯)의 명당자리를 찾았는데,
            동네에 살고 있는 주(朱)씨 집안에게 빼앗기게 되었다.
            그래서 명당의 둘로 나누어 왼쪽은 이(李)씨의 유골을 묻고 오른쪽에는 주(朱)씨의 유골을 묻었다고 한다.

            그래서 같은 시기에 태어난 후손 중에서 두사람의 천자(天子)가 나오게 되었다.
            주(朱)씨 집안에서는 주원장(朱元璋)이 중국에서 명(明)나라를 세워 천자(天子)가 되었고,
            이(李)씨 집안에서는 이성계(李成桂)가 조선(朝鮮)을 건국하여 왕(王)이 되었다.


          이성계(李成桂 : 1335 년 ~ 1408 년 ----- 재위 : 1392년 ~ 1398년 )

            1392년 조선 건국


          주원장(朱元璋 : 1328 년 ~ 1398 년 )

            1368년 중국 남쪽지역을 평정한 주원장(朱元璋)은
            남경(南京)에서 황제로 즉위하여 명(明 : 1368년 ~ 1644년)나라을 건국하였다.

            몽고족이 세운 원(元)나라의 지배를 받았을 때 중국의 한족(漢族)은 최하층민이었다.
            원(元)나라가 쇠퇴하자,
            한족(漢族)을 중심으로 중국 남쪽지역을 평정한 주원장(朱元璋)이 명(明)나라을 건국하였다.

            명(明)나라는
            1644년 중국 북쪽지역인 만주지역에서 건국된 청(淸)나라의 공격을 받고 멸망하였다.


        (7) 임진왜란(壬辰倭亂)을 막아낸 조선(朝鮮) ,,,,,, 그 덕택에 명(明)나라가 망하지 않았다.

          일본이 일으킨 전쟁인 임진왜란(壬辰倭亂 : 1592년 ~ 1598년)으로 조선(朝鮮)은 초토화 되었지만,
          명(明)나라는 망하지 않았다.


        (8) 청나라의 공격을 막지 못한 조선(朝鮮),,,, 청(淸)나라의 공격으로 명(明)나라가 멸망하였다

          1616년 만주족(또는 여진족)인 <누르하치>가 만주지역을 통일하고 후금(後金)이라는 나라를 세웠다.

          만주에서 자리 잡은 후금(後金)은 중국의 남쪽에 있는 명(明)나라를 치고 싶었는데
          명(明)나라와의 전쟁을 위해서 한반도에 있는 조선(朝鮮)이 걱정되었다.
          조선(朝鮮)에서
          자신들이 명(明)나라를 치고 있는 사이에 자신들의 후방을 공격할 것이 염려되었던 것이다.

          조선(朝鮮)의 광해군( 光海君 --- 재위 : 1608년 ~ 1623년 )은
          북쪽에 있는 후금(후에 淸나라로 이름을 바꿈)과 남쪽의 명(明)나라 사이에 중립외교 정책을 썼는데
          인조(仁祖 --- 재위 1623년 ~ 1649년 )가 즉위한 후에
          조선(朝鮮)은 후금(後金)을 배척하고 명(明)나라와 친선 관계를 유지하였다.

          이에 자극 받은 후금(後金)에서는 1627년 3만의 군대를 이끌고 조선(朝鮮)을 침공해 왔다 (정묘호란).
          인조와 신하들은 강화도로 피난을 갔고
          후금(後金)과 형제 관계는 맺겠다는 조약을 맺은 후 전쟁을 마무리지었다.

          1636년 국호를 청(淸)나라로 바꾼 후금(後金)은 형제 관계가 아닌 군신 관계를 요구해 왔다.
          조선(朝鮮)이 이 요구를 거부하자
          청(淸)나라는 12만 군대를 이끌고 또 다시 조선(朝鮮)을 침략했다 (병자호란).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인조(仁祖)는 서울을 버리고 남한산성으로 들어가 항전하다가 항복하게 된다.
          이때부터 조선(朝鮮)은 청(淸)나라와 군신 관계를 맺게 된 것이다.

          1644년 청(淸)나라는 명(明)나라 수도였던 뻬이징(北京)을 점령하고 청(淸)나라의 수도로 삼았다.

          청(淸)나라가 남쪽의 명(明)나라를 치기 위해서 후방이 염려스러워 조선(朝鮮)를 먼저 침략했었는데,
          조선(朝鮮)에서 청(淸)나라의 1627년(정묘호란)과 1636년(병자호란)의 두번에 걸친 침략을
          모두 막아 내지 못하는 바람에 명(明)나라가 망하게 되었다.


        (9) 6.25 전쟁에서 중공군을 막아낸 한국(韓國),,,,,,,그 덕택에 중국(中國)이 망하지 않았다.

          한국에서 중국(북부지역)의 침략을 막아내면 중국본토(남부지역)은 절대 망하지 않았다.

          만약 한국의 6.25 전쟁에서 중공군이 한반도의 전쟁에서 승리하였다면
          이긴 군대가 중국으로 넘어가면서 중국은 분명히 둘로 갈라져 싸웠을 것이고,,,
          중국은 지금(2010년)의 중국이 아닐것이다.
          이유 --- 역사가 증명하고 있음 --- 이 페이지에서 상세히 설명하였음


        (10) 결론

          역사가 증명하고 있듯이
          중국은 북부지역에서 새로운 신흥세력이 일어나
          한국과 같은 주변국가들을 괴롭히고 난후 중국의 남부지역을 차지한다.

          중국이 둘로 갈라지면 역사 흐름의 열쇄는 한반도가 쥐게 되어 있다.

          일본이 만든 만주국이 새로운 신흥세력으로 흥하지 못했지만
          언젠가 만주지역에서 일어날 새로운 세력을 기대하고 기다리고 있다.

          중국에서 해변가의 도시에서 잘사는 사람들에 비해서
          산골에서,,,농촌에서,,,, 못사는 농민들이 반란을 일으킨다면
          그때 반란의 주동자는 무조건 만주지역에서 나온다 ------- 이유는 역사가 증명하고 있음 --- 100% 정확

          이런 세력이 등장하면
          한국은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 ---- 주역(周易)을 공부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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